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옵/신 페스티벌
장르와 경계를 넘어선 축제로서의 예술
옵/신 페스티벌 김성희 예술감독
장(Scene)으로부터 벗어나기(Ob)
‘옵/신 페스티벌(OB/SCENE Festival)’은 2020년에 시작되어 연극, 공연, 무용, 미술, 영상, 뉴미디어 등
종래의 장르 구분을 없애고 경계를 가로지르는 국제 예술 축제다.
옵신은 ‘장(scene)으로부터 벗어난다(ob)’는 의미의 합성어이다.
현대예술이 다원화되며 상호 교류의 폭이 다양해 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만연한 장르주의와 주류와 비주류간의 격차는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방해하기도 하고, 대중들에게 공회전하는 담론만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시점에서, 기존의 예술지형을 교란하며 동시대 예술가들의 관점과 태도를 중심으로 기획을 하고 있는 옵신의 김성희 예술 감독을 만나보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김성희 예술 감독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국제라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동시대 공연예술을 기획하고 있는 김성희라고 합니다. 2007년부터 약 7년간 ‘페스티벌 봄’을 이끌어 오다가, 광주에 지어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 극장의 초대 예술 감독으로 초청받아 개관 페스티벌과 시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극장 세팅을 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다원예술 기획을 외부 큐레이터로써 처음 시도하기도 했죠. 그 다원예술 프로젝트 디렉터를 마친 뒤 새롭게 창설한 페스티벌이 옵/신 페스티벌입니다. 또한,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 교수로도 재직중입니다.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
감독님께서 이끄시고 계시는 ‘옵/신 페스티벌(OB/SCENE Festival)’은 어떤 곳인가요?
옵신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연간 가을에 열리는 국제 동시대 예술 축제입니다. 저희는 축제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작품 제작에서 시작해 그것들을 관객에게 선보이고, 나아가 국제적으로 한국의 동시대 작가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옵/신 페스티벌은 국제 동시대예술이 국내에 실시간으로 소개되고, 국내 작가들이 해외 무대로 나가는 창구역할을 해내는 것이죠.
앞서 동시대 예술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요, 국내에서도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표현을 빈번히 사용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 단어가 단순히 사조로 여겨지기보다는 더 태도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동시대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그래야 국제라는 무대 위에서, 동시대 예술의 의미가 서구 중심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작동 원리에서 벗어나 세계를 평평하게 바라보려는 현 문화 예술계의 과업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전지구적으로, 각자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동시대 관점들이 서로 교차하며 한자리에 모인 곳이 바로 옵/신 페스티벌입니다.

옵/신 페스티벌
감독님께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 초대 감독을 역임하시는 등의 경력을 쌓아오시며 다원예술이라는 개념을 한국에 안착시키셨는데요. 특히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Bo:m)'으로 국내외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소개해 오셨습니다. 당시에도 센세이셔널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옵/신’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설정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데, ‘옵/신 페스티벌’은 ‘페스티벌 봄’의 연장선이 아니에요(웃음). 동시대 예술을 다룬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가들의 관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그동안 일해왔던 모든 기관과 조직체는 각자의 창설 이유도, 비전도, 갖고 가야 할 책임도 명백히 다릅니다. 페스티벌 봄의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2000년도 초 국내 예술환경은 형식적으로는 보수적이었고, 세계와 단절된 지역주의가 심했어요. 그래서 젊은 세대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나아가서는 미래를 상상하기 힘든 생태계라고 판단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예술계를 외부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로서 페스티벌 봄을 창설했습니다.
흥미롭게도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는 국제 공연예술계에도 엄청난 변혁기였습니다. 무용이란 무엇인가, 연극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공연예술의 근원에 비평적인 질문이 가해지면 형식적, 관점적, 그리고 태도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혁명적인 시기였죠. 그렇게 시기가 딱 맞아떨어져서 ‘페스티벌 봄’은 그러한 국제적인 변화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서사를 극복하는 ‘포스트 드라마연극’,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 *농당스(non-danse), 그리고 장소기반, 수행적 퍼포먼스, 관계미학 등 다양한 개념들이 소개되었죠.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예술계가 실시간으로 담론들을 공유하고, 시간 차를 좁혀 새로운 세대가 여기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21세기 오늘날 우리는 인류세, 신냉전, 기술혁명 등 새로운 문제들을 당면하게 되었고 예술계를 둘러싼 환경도 달라졌어요. 따라서 페스티벌 봄과 옵/신 페스티벌의 비전은 다를 수밖에 없겠죠. 옵/신 페스티벌은 이러한 변화에 응답하는 예술의 비전을 담고자 창설했고 이는 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가 앞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전제로 시작된 페스티벌입니다.
* 농당스(non-danse): 비(非)무용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1990년 초중반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등장했다. 기존의 무용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타 예술분야(연극, 영상, 텍스트, 조형미술, 음악)가 통합되는 무용 공연 현상이다.
현대예술에서의 장르주의를 허물고자 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아까 말씀해 주신대로, 다양한 범주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걸 넘어서 직접 기획하신 작품들을 국제무대에 소개하기도 하셨어요. 특히, 작년 옵신 페스티벌에서 오카다 도시키의 에이조 연극(영상 연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신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이외에도 감독님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었던 기획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의미 있던 기획들 중에, 저에게 가장 선물 같았던 작업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막 페스티벌 때 제작되어 소개된 아피찻퐁 위라세타꾼(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열병의 방(Fever Room)>이라는 작품입니다. 아피찻퐁은 태국 출신의 영화감독인데 에술극장의 위촉으로 처음으로 무대연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유럽, 아시아를 통틀어서 본 적이 없는, 완전히 독창적인 관점, 태도, 및 형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감독 당시 세웠던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형식과 기준을 재설정’하겠다던 비전을 실현시켜 준 작품입니다. 기획자의 비전은 결국 작가를 통해서 현실화 될 수 있는데, 그러한 면에서 작가에게 큰 고마움을 느낌니다. 올해 옵/신 페스티벌 회고전에서 이 작품 역시 소개 될 예정입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열병의 방(Fever Room)>,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5, 해당 작품은 이번 2023 옵/신 페스티벌에서 관람 가능하다.
또한, 로버트 윌슨(Robert Woodrow Wilson)과 필립 글래스(Philip Morris Glass)의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이라는 현대 오페라를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공연 예술 분야에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거의 혁명과도 같이 여겨지는 작업입니다. 사실 제가 공연 기획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 중 하나 역시 로버트 윌슨의 대표작입니다. 제가 아시아문화전당 개막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초연 이후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던 해당 작품이 새롭게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저희 극장도 공동제작에 참여하여 개막 시즌 프로그램으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이 공연을 제작하지 않겠다’는 로버트 윌슨의 선언과 함께 저희 극장의 공연을 끝으로 다시는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된 작품입니다. 당시 공연 전날 잠도 못잘 정도로 저를 들뜨게 만들었던, 그런 기획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로버트 윌슨, 필립 글래스,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 이 4막의 오페라는 1976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2015년 10월 광주에서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예술가들의 관점을 중요시하고, 장르나 표현 양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작업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 같습니다. 반면, 컨템포러리 아트 자체가 난해하다는 인식이 있다보니 대중의 입장에선 이러한 자유분방함이 더욱 낯설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은데요. 관객과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하는데요, 저는 ‘우리는 예술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로 질문을 바꿔 답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늘 난해한 예술은 잘못된 것이고, 친숙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은 오히려 불편하고 낯선 것을 대면하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우리가 미술관이나 극장을 가는 이유는 사람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편견, 혹은 왜곡된 시선이나 좁은 시야와 같은 것들이 붕괴되는 경험을 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변화된 관객들이, 사회에 돌아와, 더 나은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사실 동시대 예술의 사회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랑시에르라는 철학자가 말한 ‘해방된 관객’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는 옵/신 페스티벌에서 소개되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관점들을 통해 관객들이 감동과 즐거움보다, 스스로 사유하고 변화하는 ‘해방된 관객’으로서의 경험을 가져보기를 바랍니다.
2023년 현재, 감독님께서는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현위치를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저는 아시아 동시대 예술에 엄청난 잠재성이 있고, 지금이 그것이 빛을 발하는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세기 동안은 철학이나 예술 담론은 인식론을 바탕으로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기호 자본주의가 팽창됨에 따라 예술은 점차 무력해졌고 그러한 한계를 마주하면서 예술은 다시 존재론적 질문을 향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21세기 탈근대적 사유가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탈이분법적, 탈주체적 사유에 더 가까운 아시아 예술가들이 미래예술의 비전을 제시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희망을 가집니다. 또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강한 아시아 국가들이 더 빠르고 다양한 환경에서, 앞서가는 사유를 보여주거나 흥미로운 방법론들을 제시하는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그렇군요. 예술 분야에서 종사하시기 전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전공 및 현직자가 되기 이전의 과정들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춤을 췄고, 전공도 현대 무용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무용으로 학사, 석사 졸업을 한 뒤 당시 무용의 중심지였던 뉴욕으로 가게 되었죠. 그 당시 미국에서도 신학문으로 떠오르고 있던 예술 경영학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예술경영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미국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한 지식들이 현재까지도 극장이나 축제 운영을 하는 실무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경영이나 행정보다는 작품 제작이나 프로그래밍에 더 관심이 있어 유학 이후에는 지리적으로는 유럽, 내용적으로는 예술가들과 더 가까이 활동하였습니다. 동시에 학교에서 가르치며 담론들도 연구해야 했죠. 궁극적인 제 꿈은 페스티벌 메이커, 큐레이터, 그리고 프로그래머였기에 동시대 작가들을 만나고, 작품들을 직접 보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사조나 작품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들을 거쳤고, 동시대예술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LG아트센터 자문, 현 SPAF의 전신인 서울연극제에서 예술감독 어시스턴트도 경험했고요. 이후, 한국현대무용제가 모다페(MODAFE, 국제현대무용제)로 전환하는 시점에 디렉터를 4년 간 맡았습니다. 이후, 그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창설한 것이 ‘페스티벌 봄’입니다.
말씀 주신대로, 여러 기관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쌓아오셨는데, 이렇게 다원성을 추구하는 자유분방한 축제에 몸담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맨 처음에 한국에 돌아와서 기획을 하고자 했을 때 국내 공연예술계에는 비전을 설계하고, 작가와 함께 그 비전을 구현해내는, 제가 기대했던 그런 ‘기획’은 개념 조차 없었습니다. 미술계는 학예사, 큐레이터 등 공연 쪽 보다 훨씬 앞서서 제도화되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공연예술계는 대중화, 해외진출,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높았고 기획자는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던 시절이라 저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게 일의 역할과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줄 선배도 없었죠. 그러다가 운 좋게 제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신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벨기에 기획자인 프리 라이젠(Frie Leysen)이라는 분이세요.
프리 라이젠은 컨템퍼러리 공연예술의 메카로 알려진 싱겔 극장과 페스티벌의 참고서라고 불리는 쿤스텐 페스티벌(Kunstenfestivaldesarts)의 창설자이자, 문화 예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라스무스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운이 좋게도, 그 분으로부터 기획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예술이 이 사회 안에서 왜 존재해야 하는지 등 제 생각과 태도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세요. 더 나아가 페스티벌 봄 중반기부터, 지금까지 제 옆에서 실제로 조언해 주고, 지지해 주고, 지원해 준 친구이자 멘토였습니다. 특히, 아시아문화전당 비전을 함께 설계했습니다. 프리 라이젠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유럽 중심주의를 깨고, 동시대 예술의 개념을 전지구적으로 평평하게 재편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활동 전반이 이러한 비전에 동참하여 동시대 예술의 개념과 지형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특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비전에 설계하며 이러한 고민들, 질문들, 그리고 성찰들을 함께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옵신은 주류 예술과 평행선을 긋고 달리고 있는데요. 다양한 예술의 과제들 속에서 새로운 기획을 하는데 어떤 시각과 역량이 필요한지, 동시대 예술 감독으로서 청년들을 위해 조언과 응원의 말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부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세요. 저는 늘 ‘동시대’의 정의를 설명할 때 조르주 아감벤의 이야기를 빌려오는데요. 그가 말한 ‘동시대적’이란, ‘자신의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자, 자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 고로 비시대적이고 비현실적인 자가 동시대적’이라고 한 것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동시대 예술’은 메인 스트림의 시계추에 맞추어질 수 없는 거예요. 오히려 그것의 모순과 균열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동시대예술가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유하고, 비평적인 관점와 태도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예술에 대한 엄청난 헌신, 사랑, 그리고 열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제적 논리나 정치적 힘에 포획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비판적인 시선과 목소리를 자유롭게 개진해 나가고, 그런 것들을 사회와 공유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데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그런 예술가나 기획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 가을에 있을 제4회 옵/신 페스티벌도 몹시 기대가 됩니다.
올해 있을 제4회 옵/신 페스티벌(10.31-11.26)은 20세기 예술사를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예술적 관점과 형식들을 한데 모아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늘 바쁘게 주어진 프로젝트 안에서 고민하느라 전체를 조망할 기회가 없었는데, 회고전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참 뜻깊습니다. 사실 저에게 20년은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회고전을 준비하다 보니 지난 20년 동안 예술 형식도, 우리가 당면한 환경과 조건이 크게 변회되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아피찻퐁의 작업을 포함해 페스티벌 봄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그리고 옵/신 페스티벌의 핵심 모멘트를 보여줄 수 있는 약 20명의 작가들을 선정했으니, 동시대예술의 지난 20년 간의 궤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 옵/신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은 홈페이지(http://obscenefestival.com/festival)에서
확인 가능하며, 티켓은 2023.10.10 화요일 저녁 8시에 오픈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