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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ATI) 기업탐방] 19세기발전소

작성자 : 이지원 조회수 : 579 2023-11-24



100년 전 우리 민중의 이야기를 전하는 19세기발전소


19세기발전소 송종훈 대표

 


19세기발전소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신문을 번역⦁출판하는 송종훈 대표의 1인 기업이다.

대한민국의 근본인 민중, 그 아무개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을

사명으로 매일 인터넷뉴스 칼럼 ‘근대뉴스 오디세이’를 연재해오고 있다.

‘기억해야 반복하지 않는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해야 한다’고 말하는 송종훈 대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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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발전소 송종훈 대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19세기발전소 대표 송종훈입니다. 저는 1800년도 말 대한제국이 설립되고 무너지며,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던 격변의 시기에 나온 신문들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신문, 신한민보,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들은 현시대의 사람들이 보려면 필수적으로 번역을 거쳐야 합니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고, 한자에 대한 지식도 있었기에 우연히 접한 이 사료들을 번역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특히 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보다, 그 어려운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버티며 살아남은 민중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신문 한편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를 매일 번역해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주제별로 사료를 모아 출판하고 있습니다.



어려우면서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결과물들이 궁금합니다. 

제일 처음으로 출판한 책은 1920년대 경기도 고양시의 지역과 관련한 기사를 담은 <고양 1920‘s>입니다. 현재 제가 사는 곳이기도 한데요. 그 시절 고양시 지역민들의 울고 웃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독립운동가들의 기사들을 모은 <서대문형무소>가 있습니다. 자료를 통해 1,093명의 독립운동가를 찾았어요. 일제강점기의 검열이 있었을 테니 이분들은 최소일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저를 무척 놀라게 했습니다. 이분들이 애썼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명단을 가지고 3년 전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조형물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귀화한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가 설립한 특수학교인 ‘자혜학교’에 걸려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의열단의 행적을 모은 <잊혀진 전설-의열단>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마라토너가 졸업한 양정고등학교의 기록을 담은 <양정은 양정이다>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당시 육상대회를 휩쓸며 민중들에게 희망을 전해준 양정고등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갔다는 기사부터 수학여행을 평양에서 경주로 갔다는 이야기까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그때는 평범한 일상이었다는 것이 재미있죠.



작업 하나하나가 흥미롭습니다. 이와 유사한 출판 프로젝트를 지금 진행하고 있거나 계획하는 것이 있을까요?

아직 발간은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휴전선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호랑이와 관련한 기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갔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실은 한반도의 저 오른쪽 끝인 함경북도에서 부산 동래 온천까지의 기록을 모음으로써 휴전선이 존재하기 이전에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호랑이라는 주제 안에서 우리 땅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였는지 느껴볼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해 나름의 민족적 가치를 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을 하실 때 기사 자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 때도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1920년부터 40년까지 있었어요. 1910년 한일합병조약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이후로는 매일 신보가 있었고요. 당시 신문에 정치적 홍보나 도로를 개통했다는 등의 정책적인 정보가 담겨 있어, 좋은 역사적 근거가 되어줍니다. 다만 총독부에서 만든 기관지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검열이 있었기에 자료 찾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중의 생활을 전달하는 저로서는 접근의 어려움이 적지만, 문제는 원본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음에도 읽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있어도, 없는 것이 됩니다. 읽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번역해 현재의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자료로 만들어 놓아 어디서든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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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대표



어떤 계기로 지난 100년의 기록을 남겨 “역사를 잊은 민족을 미래도 없다”는 신채호 선생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수많은 시대의 역사 자료 중 19세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19세기에 나온 뉴스들을 보면 그 힘든 일제강점기를 이겨내게 해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저 우리 땅에서 버티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시대에 독립운동이든 도피든, 한국 땅이 비어 있었다면 우리는 한반도를 되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제자리를 지키며 버티어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기록해두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본을 얻을 수 없는 일임에도 매달리고 있습니다. 


19세기발전소는 당시 시대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신문을 통한 기록을 만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지인이 지어줬어요. 21세기가 아닌 19세기발전소라는 것이 기억에 잘 남을 것 같아 쓰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때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읽기 쉬운 텍스트로 번역돼 만들어지기에 ‘발전소’가 잘 어울리기도 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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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 19세기 발전소의 작업실



대표님의 작업 중 디지털타임즈 경제지에 올해로 3년째 연재 중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00년 전에 있었던 일과 지금 시대를 비교하며 근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매일 100년 전, 99년 전, 98년 전 신문내용을 번역해 올리고 있습니다. 봄에는 100년 전 사람들이 즐겼던 꽃놀이에 대한 글을, 여름에는 선조들의 피서 방식, 파리 떼가 들끓던 때에는 ‘파리 잡기 대회’가 열렸다는 이야기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시의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칼럼 내용을 선택해 작성합니다. 아무래도 재미가 있어야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하루에 7건에서 10건 정도의 기사를 번역해 올리고 있습니다. 작업을 처음 할 때는 원본 기사 자체에 오타나 당시에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를 번역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숙련이 돼서 지금은 한자 사전이나 사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읽을 수 있게 돼 작업이 훨씬 편해졌어요. 이제는 매일 기사를 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그 많은 텍스트를 읽고 번역할 수 있는 분이 많지는 않아서 약간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송종훈 대표님께서는 본인을 '아키비스트'라고 소개하시는데요. 기록관리전문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따로 자격증이 필요한가요? 

국가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요. 전공으로 따지자면, 제가 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문헌정보과가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키비스트’라고 하면 멋있기 때문이죠. ‘아카이빙’이라는 것이 꼭 문서를 번역만 하는 일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까지 통틀어서 하는 일입니다.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옛 신문을 현대에 사는 분들이 읽기 쉽게 번역하고 데이터를 모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기사를 번역해 올리는 일과 더불어, 주제나 지역을 의뢰받아 깊게 파고드는 작업도 하고 해당 작업을 모아서 출판하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고양 1920‘s>과 <양정은 양정이다>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19세기의 기사를 아카이빙하고자 결심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아키비스트로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11년 동안 고양시에 살면서 한자와 고사성어, 한시 등 어려운 텍스트를 많이 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기록을 현대의 사람들이 읽기 쉽게 번역하고 정리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현대 신문 기록이 읽을 수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죠. 어디에 쓰임이 있을지는 모르면서도 하루하루 꾸준히 데이터를 모았는데, 그게 아카이빙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키비스트로서 가져야 하는 역량은 결국 기록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멀리 과거에 있는 텍스트와 나, 단둘이 소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경제적 이윤도 창출하기 어렵고요. 눈앞의 이익보다는 언젠가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고 기억해줄 것이라는 직업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빠른 타자 능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하루에 번역해야 할 작업량이 많아서 이 부분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시시각각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급변하는 지금, 100년 전의 오늘을 계속 아카이빙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해와 달은 뜨면 지죠. 하지만 별은 제자리에 있어요. 옛날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거나 사막을 건너갈 때 무엇을 보았을까요. 해와 달이 아닌 별입니다. 위치가 변하지 않는 별과 같이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수한 기록을 찾아 읽고 쌓으면서 그것을 찾고 싶은 거예요. 제가 번역한 텍스트를 보는 분들도 한 발자국 떨어진 과거를 보면서 어떤 깨달음을 느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현재에 닥친 갈등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 속 모습들이 현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옛날에도 마약 문제가 대두됐었고,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죠. 저는 그중에서도 서로 돕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꺼내 보여주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기자님의 할머님 세대에서는 가을에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기사로 보여드릴 수도 있죠.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진 때가 아닌, 한반도의 시절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재밌지 않나요?


또 일례로, 당시 고등학생 마라톤 대회에서 양정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본 학생들을 상대로 우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기사를 본 사람들은 희망을 얻었을 거예요. 통쾌하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 고등학교를 나온 선수가 손기정, 남승룡 선수입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바로 그들이죠. 그 학생들이 무엇을 타고 베를린으로 갔을까요?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상상이 가나요?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생산된 콘텐츠를 청년세대와 공유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하는 작업을 웹툰이나 영상 같은, 젊은 세대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오는 미디어로 만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제가 혼자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역할은 거기서 구슬을 만드는 사람, 즉 읽기 쉬운 텍스트를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관심이 있다면 저는 기꺼이 컨텐츠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글보다는 시각적인 매체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니까요. 


이전에도 협업 사례가 있긴 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 관한 글을 번역할 때 제 작업에 관심을 가진 기업에 지원을 받았었는데, 제가 텍스트를 제공하고 젊은 분이 그걸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었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가령 긴박하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리는 장면을 그려야 하는데 당시에 쓰던 전화기가 아닌 다이얼 식 전화기를 그리더라고요. 그 옛날의 모습을 상상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거겠죠. 그래도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더 많은 기록을 읽을 수 있도록 자료를 아카이빙하고 번역해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고요.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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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만절필동”,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현재 구직에 나선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100년 전 청년의 이야기가 있을까요?

기자님께 제 저서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를 드리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같을 것 같아요. 만절필동(萬折必東), 만 번을 꺾여도 동쪽으로 흐르는 황허강처럼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안다면 꺾이고 좌절하더라도 언젠간 그곳에 닿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원하는 일이 있지만 어떤 이유로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되어도, 이 뜻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은 뜻한 곳에서 일하고 있게 될 겁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양정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처럼, 손기정 선수를 떠올리며 자신만의 뜻을 품고 끝까지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1세기에 19세기 발전소는 어떤 곳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여쭙고 싶습니다. 

다가가기 힘든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했던 곳으로 기억되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근대를 살아낸 백성들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있지만 백성이 살았던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백성이 없으면 임금이 없기에 저는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궁금하게 여겨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나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시각 매체로 구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기록을 쌓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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