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독립 큐레이터 (아트모아 기자단 5기 황아영 기자)
[아티(ATI) 기업탐방] 독립 큐레이터
"불안정한 만큼 오히려 더 자유로워요"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의 세계를 확장하는
임수영 독립 큐레이터
미술 평론가, 기획자, 미술사학자...
임수영 독립 큐레이터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다양한 직함이 따라붙는다.
임수영 큐레이터는 이를 각각 구분하기보다
서로 교차시키며 자신만의 길을 확장해왔다.
미술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쌓아온 궤적,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임수영 독립 큐레이터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 제 삶을 돌아보니 ‘나는 여러 개의 모자를 쓰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 ‘Wearing different hats’라고 하는데요, 상황에 따라 다른 모자를 쓰듯, 저는 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사부터 박사까지 미술사를 전공하며 연구를 이어왔고, 최근에는 동시대 미술 전시 기획에 집중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연구와 기획을 별개의 영역으로 보기보다 함께 이어가고 싶어 대학 강의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술을 중심으로 그때그때 다른 옷을 입고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독립 큐레이터·미술평론가·독립 기획자·미술사학자 등 다양한 영역을 병행하고 계시는데, 실제 현업에서는 이 활동들이 어떤 방식으로 교차하며 작동하는지 궁금합니다.
기획이라는 영역이 워낙 폭넓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접점을 오가게 됩니다. 글을 쓰고, 동시대의 이슈를 연구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기관과 협력해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모두 그 안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교차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입니다. 갤러리에만 있으면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적이고, 학교에만 있으면 또 다른 한계가 생깁니다. 하지만 연구와 기획, 강의와 협업을 병행하다 보면 훨씬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고, 각기 다른 관점의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연구와 기획이 교차하며 얻는 자원도 다릅니다. 미술사 연구는 대체로 거리를 두고 과거를 성찰하지만, 기획은 동시대 작가와 호흡하는 과정입니다. 스튜디오를 찾아가 작업 환경을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늘 새로운 영감을 줍니다. 연구가 객관성을 확보해 준다면, 기획은 현장의 감각을 더해줍니다. 두 영역이 만날 때 작업은 더 풍성해지고, 그것이 제가 이 일을 계속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평론가로서 작품을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맥락입니다. 작품을 볼 때 그것만 따로 떼어내기보다, 작가가 걸어온 작업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살펴봅니다. 전시 또한 개별 작품보다 전체 맥락과 그 안에서 생겨나는 의미에 주목합니다.
평론 작업을 할 때 어떤 자료 조사나 현장 경험을 가장 많이 활용하시나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를 직접 만나는 경험입니다. 스튜디오에 가면 작업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업실의 풍경, 책상 위의 자료, 작가의 일상적 동선에서도 작가의 사고와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또 해당 작가와 작업에 대한 글을 가능한 많이 읽습니다. 새로운 관점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여기에 제가 최근 관심 있는 사회적 이슈나 읽었던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더해 글을 확장합니다.
평론은 작가와의 대화, 주변 맥락, 그리고 제 문제의식을 함께 엮어내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비평은 작품에 어느 정도 기대어 출발하지만, 글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예비 인재들이 미술을 깊이 이해하고 안목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훈련은 무엇일까요?
무조건 경험. 그것도 선입견 없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좋은 작품을 보려면 반드시 어떤 미술관에 가야 한다’같은 생각은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전시뿐 아니라 공연, 영화,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접하는 것이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를 다양한 문화적 자극 속에 자주 노출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하고 계신 변화나 동향은 무엇인가요?
한국 미술계의 특징 중 하나는 모두가 집중하는 의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AI를 비롯한 아트&테크 분야, 국공립 미술관에서 추진한 열린 미술관 프로젝트, 사회적 약자와 이동 약자를 고려한 배리어 프리가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대체로 중앙정부의 지원 사업과 맞물려 형성됩니다. 카테고리를 묶어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방향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미술계가 어떤 주제에 주목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기관들의 지원 사업을 살펴보면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관 소속 큐레이터와 독립 큐레이터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보시나요?
독립 큐레이터는 제도나 기관, 자본과 같은 구조에 속하지 않은 주체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비독립적일 존재기도 합니다.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어딘가에 기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원 사업, 후원자, 협력 기관 등 외부 조건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자유로움과 불안정성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반대로 기관 큐레이터는 뚜렷한 소속과 기반이 있습니다. 기관을 대표해 전시를 추진하는 만큼, 기관의 규모와 운영 기조에 따라 활동 범위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관심사와 기관의 방향성이 맞아떨어진다면 안정적이지만, 제약도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독립 큐레이터라는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자 합니다. 불안정하지만, 그만큼 더 자유롭다는 것이 장점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전시를 기획·운영할 때 특히 크게 발휘해야 했던 역량은 무엇이었나요?
‘우정’을 키워드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협업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술계에서 개인과 개인을 잇는 관계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시 기획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작가, 후원자, 컬렉터, 디자이너, 편집자, 실무자까지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관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량은 ‘소통’입니다. 오해 없이, 명확하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대화를 생략하면 작은 차이도 쉽게 문제가 됩니다. 의견은 언제든 조율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작가와 협력자들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Walking Korea: Cut Pieces》 전시 전경 (사진)=The WilloW
대표 프로젝트 Ⅰ - 《Walking Korea: Cut Pieces》 큐레이터
이 전시는 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 폴 살로펙의 ‘Out of Eden Walk’ 프로젝트에서 출발해, 그의 ‘느린 저널리즘’ 여정을 전시 언어로 풀어냈다. 이들은 ‘걷기’를 시간과 공간을 오려내는 가위질에 비유하며, 주변부의 지형을 조명하고, 시간의 층위를 재구성하며, 현실의 상처와 공동체의 흔적을 각자의 매체로 드러낸다. 경동시장 속 ‘더 윌로’에 모인 작업들은 하나의 지형을 이루며, 관객에게 함께 걷고, 길을 잃고, 잠시 멈추어 서는 경험을 제안한다.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은 무엇인가요?
이 전시는 기획 방식을 새롭게 실험해 보고자 한 도전이었습니다. 보통 전시는 주제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작가, 작품, 공간을 구성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먼저 함께 걷고 경험을 나눈 뒤, 그 경험이 어떤 전시로 이어질지를 지켜본 것이죠.
그래서 특정한 메시지를 주장하기보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과 대화를 풀어내는 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신작을 선보였고, 또 누군가는 기존 작업을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보여주었는데,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을 반영했다는 점이 새롭고 의미 있었습니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전시 전경 (사진)=광주비엔날레
대표 프로젝트 Ⅱ -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보조 큐레이터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물을 전환과 회복의 은유로 지구를 저항과 공존, 연대와 돌봄의 공간으로 그려볼 것을 제안한다. 세계 각국의 작가들은 저항과 해체, 생태와 환경의 메시지를 던짐과 동시에 연대와 회복의 장을 열어, 물처럼 이질성과 모순을 포용하는 예술의 힘을 보여준다. 더불어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던 광주항쟁의 정신을 재조명하며, 이를 특정 지역의 경험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곳곳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움직임과 연결한다.
이 전시는 도덕경의 ‘*유약어수’에서 주제를 차용했습니다. 물의 부드러움과 강인함이라는 양가적 속성을 전시 언어로 번역하고, 관객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하셨나요?
권력과 힘을 은유하는 개념에 가장 집중했습니다. 이어 물의 부드러움과 강인함이라는 양가적 속성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정신적 층위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 과정에서 전시 주제와 세부 주제들이 다양해질 수 있었습니다.
*유약어수: 세상에서 물이 가장 약하지만,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 전시는 사회적 담론을 다루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관객이 깊이 사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어떤 장치나 접근을 고민하셨나요?
전시는 결국 공간에서 구현되기 때문에, 작품 배치와 동선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작품을 본 뒤 자연스럽게 또 다른 작품이 시야에 들어오면 관객은 두 작업 사이의 연관성을 스스로 찾게 됩니다. 그래서 성격이 다른 작품을 일부러 나란히 배치하거나, 충분한 여백을 두는 등 관객이 사유할 수 있는 요소를 만들었습니다.
영상 작품의 경우에는 관람 조건을 세심하게 고려했습니다. 실제로 관객들이 앉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감안해 조율했습니다. 설치 과정에서는 공간 디자이너와 미니어처 모델을 만들어 움직여보기도 하고, 작가와 끊임없이 의견을 조율하며 최적의 동선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조율해 나갔습니다.

7월 피에르 위그 《리미널(Liminal)》 〈다르게 보기〉 (사진)=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 프로그램 〈다르게 보기〉 진행자
임 큐레이터가 리움미술관 재개관 후 지난 몇 년간 애정을 가지고 참여해온 프로그램인 〈다르게 보기〉는 관람객들에게 짧게 스쳐 지나가는 감상에서 벗어나, 한 작품을 깊이 바라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10~18명의 관람객이 모여 소장품 2~3점을 각각 10분 이상 감상한뒤, 음악과 같은 새로운 자극을 더하거나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는 토론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진행자의 해설로 마무리된다.
〈다르게 보기〉 진행자로서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화하고자 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였습니다. “처음 작품을 봤을 때 예상과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 작업이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키나요?”, “작가의 글을 읽고 나서 작품이 어떻게 새롭게 보이시나요?” 등의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던졌고 이걸 통해서 작품들 새롭게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참가자분들에게 반응은 굉장히 좋았습니다.
한 작품을 10분 이상 바라보는 ‘느린 감상’은 오늘날 관객에게 낯선 경험입니다. 빠른 속도에 익숙한 현대 관객에게 이런 방식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느린 감상에 ‘대화’가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감상을 나누며 전혀 다른 시선이 교차할 때 새롭게 얻게 되는 정보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컵을 봐도 누군가는 형태에 주목하고, 누군가는 컵 안의 액체에 반응합니다. 관객들은 한 작품을 두고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느린 감상은 작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대화와 공유의 시간”이라는 점을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느꼈습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연구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현재 두 가지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광주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를 비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카셀 도큐멘타 연구소와 협력해 두 전시가 어떻게 서로의 거울이자 참조점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단순한 전시 생산을 넘어, 비엔날레는 왜 존재해야 하며 어떻게 지금 이 시대에 유효한 플랫폼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역사를 되짚어가면서 질문을 던지는 작업입니다.
둘째는 홍콩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와 진행하는 연구입니다. 이곳은 아시아 미술 관련 자료를 가장 방대하게 소장하고 있는데, 최근 한국 1980년대 작가들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특히 정정엽 작가를 중심으로 여성 미술가들의 아카이브를 살펴보고 있으며, 다시 기록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내년까지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템포’를 갖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은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20년, 40년의 시간을 두고 걸어가는 길이니까요. 눈앞의 비교나 조바심에 휘둘리기보다, 더 먼 시간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속도를 지켜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시각예술 분야는 어떻게 보이느냐에 지나치게 매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드러나는 모습은 전체 중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저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긴 호흡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지켜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