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문학평론가 (아트모아 기자단 5기 최교민 기자)
[아티(ATI) 기업탐방] 문학평론가
"이것이 제가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문학평론가 김대현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문학과 평론은 어디로 가야 할까.
또 이 흐름 속에서 평론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있을까.
비평의 선두에 서서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전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평론.
오늘은 14년간 문학과 함께해온 김대현 문학평론가를 만나
그의 평론가로서의 시작과 직업정신을 알아보고
이와 함께 평론과 현대사회에 대한 견해,
그리고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하여 나눈 여러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문학평론가 김대현
반갑습니다, 평론가님.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평론가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소개해주세요.
문학평론을 하고 있는 김대현입니다. 평론을 한지는 한 15년 가까이 되고 있는 것 같고요. 그 과정에서 여러 책을 써 왔습니다. 현재는 <청색종이>라는 시 전문 문예지의 편집 주간을 맡고 있습니다.
평론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지적·예술적 산출물, 또는 사회나 문화현상에 대해 논평을 하는 직업인데요.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성실하게 읽고 듣는 것과 함께 현상에 대해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논평하고자 하는 대상에 담긴 함의를 파악하는 작업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다보니 신중해질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발견해 낼 때 즐거움을 느끼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평론가님께선 2011년 플랫폼 문화비평상 미디어비평상으로 등단하시고, 2012년엔 실천문학 평론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시어 14년 간 평론글을 작성해오셨습니다. 곧 15주년을 맞이하는 평론가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상당히 오랜 시간인데 뭘 했나 돌이켜보면 많이 게으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발표했던 글들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에 대해선 의미있는 예측이나 분석을 하기도 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많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더 깊이 파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복합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고마운 지점도 있었고, 아쉽거나 더 열심히 할 걸 이런 생각도 들어요.
평론가님은 평론 부문에 등단함과 더불어 집필 활동도 진행해오셨습니다. 평론가로서 활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 활동도 병행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든, 소설이든, 평론이든, 산문이든 모든 글쓰기는 양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근본적인 지점에서 공통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고유한 생각을 어떤 쓰기의 형식으로 표현하느냐는 선택의 영역이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주로 비평의 형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소설 또는 교양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던 지점들을 딱히 비평의 형식으로만 풀어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쓰기의 모든 양식에 대해서는 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다만 제가 자주 쓰지 않는 양식들은 그만큼 제가 못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_김대현_평론가님_강연사진_대담.png)
김대현 평론가 대담
평론가님께선 법학을 전공하셨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법학과 문학 평론은 조금은 결이 다르다고도 느껴지는데요. 법률가로서의 길이 아닌 평론가로서의 길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말씀주셨다시피 법학과 문학이 결이 다를 수도 있는데 어떤 지점에서는 유사한 부분도 있습니다. 법학은 조문의 해석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행위를 판단하고 제도에 적용을 할 지 고민들을 하는 직업이고, 평론도 비슷하거든요. 양자 모두 지금 다루는 텍스트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수용될지를 연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법은 판단의 기준을 보편적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범주화된 법체계에 두고 있다면 평론은 각각이 고유성을 가진 개별적 인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주어진 텍스트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지점들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기를 돌아보자면 법도 재미있었지만 문학이 조금 더 재미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는 제가 아닌 주변의 인식에 따라 대학의 전공을 정한 것 같아요. 그러다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동아리 비슷한 활동을 하면서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와 함께 사는 사람이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점점 더 문학에 애정도 생기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을 해보았는데요. 다행히 당선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다음은 직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평론가가 되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루트를 궁금해하실 텐데요. 평론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먼저 진입방법과 연결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평론을 비롯한 글쓰기는 전문적인 활동이면서도 진입장벽은 가장 낮은 영역입니다. 다른 직업의 면허나 허가, 신고와 같은 것이 법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다만 글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산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보충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먼저 이 길에 들어선 동료 작가들의 승인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잘 알려진 대로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신춘문예라든지 또는 출판사나 뜻을 같이 하는 작가들이 모여 발행하는 문예지에서 공모하는 신인상 등입니다. 이것을 이른바 등단이라고 해요. 등단을 하고 나면 문예지나 출판사 등에서 청탁이라는 형태로 본인의 글을 게재하고 싶다고 연락이 옵니다. 이런 식으로 전문적인 글쓰기 활동을 시작 하게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계속 유지가 되면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고 자주 오지 않게 되면 휴지기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청탁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글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방식이 하나가 있고요. 다른 하나는 출판사 측에 투고를 하고 책을 내거나 또는 손수 출판을 해서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론가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요? 또 문학 애호가인 지금의 평론가님을 있게 만들어준 특별한 동기나 서사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평론가라는 직업을 극단적으로 압축하면 결국 읽고 쓰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잘 읽는 것이지요. 내게 주어진 텍스트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또 어떤 문화적 토대 안에서 이 현상이 나오게 됐는지를 복합적으로 분석하고 읽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잘 읽기 위해서는 먼저 바탕이 되는 여러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를 조금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텍스트와 그 내용들을 정말 신중하고 주의깊게 잘 읽어야 하고 충분한 배경지식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평론을 하시는 분들은 계속해서 많은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또 가끔 보면 평론글이 좀 어려워 보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일부러 어렵게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표현들을 이용해서라도 이 텍스트들에 더 주의 깊게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모두가 쉽게 알아듣게 설명하면 좋지 않겠느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떤 텍스트들은 그렇게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문학같은 경우는 단어의 뉘앙스라던지 글자 하나하나의 차이에도 굉장히 예민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개념들을 설명했을 때 이 개념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면 어렵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개념을 사용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것을 너무 뭉그러뜨리거나 쉽게 전달해버리면 작가나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매력들을 많이 놓치는 지점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더 주의 깊게 다가가려는 과정이라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평론가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전달력이 높은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전문적 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에 대해선, 어쨌든 글을 쓴다는 건 조금 쉽게 말하면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과정이잖아요. 내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일기에 머무른다면 자기만족에 그치기 때문에 이 글들이 좀더 많은 분들에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다 보니까 아까 이야기했던 제도적인 요소들, 신춘문예라든지 문예지라든지. 이런 곳에 응모하게 된 것 같습니다.
_김대현_평론가님_현장사진_인터뷰_중_촬영_1.jpg)
김대현 평론가 인터뷰 중
말씀하셨다시피 평론은 대중의 시선에서 볼 때 항상 '어렵다'는 인상을 주곤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꺼려하거나 리뷰 글에만 머무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론가님께선 처음 평론글을 쓰실 때 어떤 자세로 마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자세라기보다는, 처음 제가 당선이 됐던 글이 문화비평 글이었는데요, 그때 아마 <1박2일>이라든지 <무한도전>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그리고<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 등이 인기가 있었어요. 특히 <나는 가수다>의 경우 시청자들이 실제로 참여해서 투표를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어서 인기가 많았어요. 그리고 저는 그러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해 분석을 했습니다. 저도 즐겁게 봤던 프로그램들이었는데 그것을 시청이 아니라 평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게 왜 재미있는지, 또 한편으로는 이게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는지가 궁금했고 또 이런 작품들은 어느 순간 인기가 떨어지고 또 다른 작품들이 나오고 이런 현상을 보면서 그 사이클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열광을 하고 그 이유는 근원적으로 무엇일까 그런 지점에서 고민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에 대해선, 시청자들이 꼭두각시처럼 타인에 의해 짜여진 각본에 따라 즐거워하는 것보다 누구에게도 통제 되지 않은 실제 상황을 즐거워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가수다>의 시스템 중 투표를 통해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즉 내러티브의 주인이 된다는 부분에서 착안을 해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현상에 대해서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를 근원적인 지점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하는게 아마 평론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인터넷을 보면 문학작품에 대한 정말 많은 리뷰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들은 평론이라 정의하지 못합니다. 리뷰가 평론이 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추가가 되어야 하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리뷰와 평론을 가르는 명백한 기준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고민을 한다면 아마 감상과 평론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상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요,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텍스트의 표면적 의미들, 텍스트를 내가 읽고 어떤 반응을 받았고 그런 지점들이 들어있다면 잘 쓴 감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요, 이 텍스트가 나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고 그것이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런 지점들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평론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아이돌 그룹의 신보가 나온 뒤에 곡이 좋고, 안무는 이래서 멋있고 이 그룹은 이래서 좋다라고 표현하는게 리뷰나 감상의 형태라고 한다면 평론은 안무가 의미하는 형식, 가사가 사회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하고 나아가 왜 저런 그룹이 형성이 되었고 파트의 분배는 어떻게 되어 있으며 어떤 멤버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가 동시에 그 방식에 대중의 선호는 어떻게 멤버들의 역할에 개입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평론이라 할 수 있겠죠. 문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페미니즘과 퀴어 소설을 읽을 때 본문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정동도 중요하지만 왜 이런 형식, 내용들이 지금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터져나갔고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런 부분들까지 고민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평론에 가깝지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번 질문은 조금은 세속적인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평론가는 원고료가 많지 않기로 유명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평론가님께서는 수익적인 면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글을 쓰시는 분들, 특히 평론을 포함해서 기초예술로 불리는 시나 소설의 작가들은 말씀대로 글로만 살기엔 수익 면에서 좋은 편은 아닙니다. 시간당 노력에 비하면 최저시급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작가나 비평가들은 별도의 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전업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소수에 가깝고요.
평론가의 경우, 강의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평론가는 상당수가 대학원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아요.그러다보니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연구소, 출판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시인과 소설가도 비슷하지만 평론가보다는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주된 수입원은 아니겠지만, 강연이나 문화행사를 진행하시면서 글쓰기로 인한 생계의 부족 부분을 보충하는 경우도 있고요. 인세로 불리는 책 판매 수익도 있기는 한데 일부 작가를 제외하고는 소득에서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편입니다.
_김대현_평론가님_강연사진_심포지엄.jpg)
한국작가회의 창립 50주년 연속 심포지엄 <생명, 평화와 한국문학> 발제, '김남주 시에 나타난 생명과 평화 사상' 中
계간지 <청색종이>와 같은 독립 출판물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대형 출판사 위주의 시장에서 특정 분야의 가치나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평론가님께서 바라보시는 지금의 독립출판물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상업목적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학 이념을 위해서 만든 이런 문예지들은 사실 역사가 굉장히 오래됐어요. <창조>라든지 <폐허>같은 문예지들도 그렇죠.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이들은 사회에 통용되는 생각들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자 해서 모인 잡지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완전한 사회는 없잖아요. 모순된 지점도 있고 안좋은 지점도 있고. 이걸 수정하고 개선하면서 나아가는 건데, 그러한 제도를 수정하고 싶다면 현재 제도 내부의 상상력 만으로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제도 바깥을 상상해야 하는 부분들이 필요하고 그런 역할들을 하는게 문학과 같은 문예지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소득 측면에서는 어려운 지점이 있지만 그걸 감당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이런 역할을 하는게 우리 시대의 문학과 문예지들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앞의 질문의 연장선상의 질문인데요, 앞으로의 시장에서 독립 출판사가 예술 산업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또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각자 열심히 노력을 할 텐데요, 아무래도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은 초연결사회이기 때문에, 작가나 출판사들이 출간한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결집시켜서 커뮤니티의 형태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 출판사들도 서포터즈 시스템이라 해서 본인들의 잡지나 출판물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접근하게 되거나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활발하게 자신들의 작품들 또는 콘텐츠들을 그분들 중심으로 소화시켜서 자생력을 가질 수 있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소규모 출판물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근 웹소설, 웹툰과 같은 새로운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이 문학 및 출판 산업에 위기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기회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론가님께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업계 트렌드나 변화가 있는지, 또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웹소설이나 웹툰도 기본적으론 창작의 장르이기 때문에 산업 자체가 커지면 아무래도 파이 전체가 커지는 부분이니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고 배우는 지점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홍보와 유통 측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웹소설과 웹툰의 장점은 휴대와 접속이 간편해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진행중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는 문학도 플랫폼에 접속하게 되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구독하고 지지하는 이런 문화들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평론가님은 글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서도 대중과 만나 문학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 채널 '작가티비'나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에서 진행자로서 또 때로는 역질문을 통한 패널로서도 문학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듯 문학 유튜브에 출연하시어 관련한 목소리를 내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금 전의 답변과도 연결이 될 텐데요. 보다 많은 분들에게 문학의 접근성을 높여 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작가들은 어떤 걸 집필하고 나면 내 임무는 끝이고 그 다음부터는 출판사의 몫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시대 자체가 변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엔 문학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기의 역할이 있었고 독자도 그걸 수긍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거의 모든 콘텐츠가 경쟁을 하는 시대이고 각자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쓰고 끝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사고가 서로 호환되고 교류되면서 더욱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튜브라든지 새로운 미디어라든지 기회가 있으면 과거와 다르게 좀더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지금도 널리 자기 작품을 알리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 같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질문인데요, 최근 AI 기술의 발달로 산업 전반에 두드러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글쓰는 AI의 등장으로 평론계 역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평론가님께서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AI의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다들 놀라고 있죠. 저도 몇가지 AI에 대해서 사용해보고 있는데 굉장히 높은 수준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머지않아 많은 부분이 AI로 대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사실 글쓰기 자체는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AI가 우리보다 잘 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예전 ‘이오덕’ 선생님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그분은 ‘글쓰기 교육은 글을 잘 쓰게 하는 교육이 아니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인간교육이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셨거든요.
요컨대 글을 쓴다는 것은 미문을 만들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문장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지금 무엇이 부족한지, 혹은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인지하게 되면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고 더 나은 삶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이거든요. 그런데 글쓰기를 AI에게 맡기게 되면 글을 잘 쓸 수는 있겠지만 사람 자체는 더 나아질 수 없겠죠. 그래서 AI시대가 오더라도 글쓰기 자체가 인간교육이라는 그런 의미들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이 또한 문학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론가로서 글이 아닌 매체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거나 비평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글은 굉장히 정제된 형태로 발표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실제로 대면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되는 말이 가지는 장점도 명확합니다. 혼자서 작업하는 비평과 달리 말은 상호작용의 특징이 있기에 그곳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양쪽 다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_김대현_평론가님_강연사진_시국문학의밤.jpg)
2023 시국 문화의 밤 1부 문학과 역사 책담회 中
비평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에 어떻게 보면 작품에 대한 재창조를 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론가님 역시 인사이트를 제공하기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하실 텐데요. 평론가님께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비평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글을 쓰고 나면 남는 성취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쓰고 났을 때는 항상 아쉬운 지점이 먼저 보입니다. 하지만 또 계속 보다보면 이 글에 나만이 포착할 수 있었던 지점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만족스럽습니다. 그걸 또 다른 분들이 알아주신다면 더욱 고맙죠. 이 글을 통해서 나의 세계가 좀더 넓어지고 다른 사람의 사고에 영감을 주었을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아요. 덧붙이자면, 어떻게 보면 쓰기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어려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 더 없이 즐거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평론가님처럼 창작을 위해 고뇌하는 다른 문화예술 종사자나 꿈나무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분야에서 함께 하시는 분들은 모두 존중합니다. 자신을 갱신하고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항상 응원을 하고요. 아마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 진입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실 텐데 어떻게 생각하면 말리고 싶은 마음도 있죠. 왜냐하면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출간한 작품이나 또는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서는 아쉽거나 어려운 점이 먼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지속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에도 장점이 있다는 이야기겠죠. 많이 힘든 지점도 있고, 어려운 지점도 있을 테지만 그걸 좀 견뎌내고 나면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에 변함이 없다면 꿈을 잘 가꾸면서 현장에 함께 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모두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평론가님께서 그리시는 평론가님의 앞으로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그린다기보다는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순간이라도 책을 들고, 읽고 있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들, 이 과정이 계속해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평론은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읽고 쓰는 직업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라도 미래에도 읽고 쓸 수 있으면 평론가로서는 별다른 바람은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