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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ATI) 기업탐방] 토커바웃아트(아트모아 기자단 5기 이수빈 기자)

작성자 : 곽송비 조회수 : 353 2025-11-13

[아티(ATI) 기업탐방] 토커바웃아트


선택에 있어 책임과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토커바웃아트 김찬용 대표



예술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시는 종종 높은 장벽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벽을 낮추고, 예술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사람이 있다.

전시 해설가이자 토커바웃아트 대표 김찬용.


그는 전시장에서 예술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미술’을 이야기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가 말하는 전시 해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와,

예술을 대중과 연결하7는 그의 철학을 들어본다.








토커바웃아트 대표 김찬용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현재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지 무엇인지 소개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개인적으로는 전시 해설가로 관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고, 토커바웃아트로는 문화 예술 사업체의 대표로 국내 미술관을 안내하거나 미술과 다른 분야가 연계된 공연 프로그램을 한다거나 혹은 문화예술 융복합 형태의 행사나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개인으로 움직였다면 현재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꾸려서 전시 해설가로 할 수 있는 일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김찬용입니다.



토커바웃아트에서 클래스, 행사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일 기획을 하시는 것 같은데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이에 대한 목표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프레젠테이션에서 말한 게, 공생과 공존을 하는 문화 예술계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저희 프로그램의 취지이자 목표가 공생과 공존을 위한 문화 예술계를 만들자는 거예요. 문화예술계가 생각보다 보수적인 부분이 있어서 진입에 장벽이 좀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 저희가 생각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멘토링이었어요. 이 멘토링을 통해 최대한의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드리면서 그 중 열정이 있고 일하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제안하거나,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미술과 음악이 콜라보레이션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술과 음악의 융복합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가보면 미술 따로 음악 따로인 프로그램도 꽤나 있었거든요. 근데 저희는 좀 더 진정한 콜라보레이션을 하고자 작품과 함께 그 시대에 작곡한 음악을 매칭해서 소개해 드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심리학자를 초대해서 예술가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푸는 토크 콘서트도 진행하고 있죠.

이러한 프로그램의 목표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 해설가에게 멘토링을 제공하는 동시에 에듀케이터 인프라도 구축하는 거죠. 전시 해설가는 아니지만 최근 2, 30대의 비평가 역할이 없어져 버렸다는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영화 쪽은 그나마 유튜브와 잘 연결이 되어 생존을 했는데, 미술쪽은 쇼츠를 제외하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에요. 그래서 이분들이 역할을 찾으실 수 있도록, 꼭 이분들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종사하시는 분들이 각자의 역할을 지킬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인 거죠. 



오랜 시간동안 전시 해설을 해오셨는데, 대표님이 정의하는 ‘전시 해설가’는 어떤 직업이며, 대중들이 갖는 오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을까요?


과거에 있었던 오해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전시 해설가 즉, 도슨트라는 명칭에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10년 전쯤에는 도슨트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낯서니까 그나마 익숙한 큐레이터라고 불렀거든요. 근데 큐레이터는 전시를 해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 도슨트는 현장 서비스업의 일종으로 관람객을 위해 최대한 핵심적인 것을 요약해서 효율적으로 전달해 주는 중간 전달자라서 큐레이터와는 완전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인 거죠.


과거에는 이런 오해가 있었다면 현재에는 도슨트가 인플루어서라는 오해가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초창기에 방송 출연 제의가 와도 계속 거절했었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혼자 하다 보니 직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환경이 개선되지 않았고.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방송에 출연을 조금 했었어요. 그 이후 도슨트 보다 방송에 관심을 갖고 이 일에 진입하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사실 이렇게 되면 생기는 문제는 ‘나’를 중심으로 전시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되면 ‘도슨트’의 존재 이유가 죽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작품에 대한 기획과 비평이 존재하지 않으면 도슨트도 존재할 수 없는데, 이걸 무시하게 되면서 생기는 불균형이 조금 보이고 있어서, 이게 또 최근 들어 생기는 오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전시 스태프를 하셨다가 전시 해설가가 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전향한 계기에 대해 자세하게 듣고싶습니다.


전시 스태프도 사실 미술 전시가 아니였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미술 전시회 스태프로 지원했었는데, 떨어진 거죠. 이후에 운영 기획사에서 전화가 와서 과학 전시 스태프를 할 수 있겠냐고 해서 처음 시작한 게 과학 전시 스태프였어요. 과학 전시 스태프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미술 전시 스태프 쪽으로 전환이 가능한지 물었고, 마침 자리가 있어 이동했었습니다. 그때 스태프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현대미술을 보고 ‘이게 뭐냐’하는 관객들이 꽤 있었어요. 서양화를 전공한 학생으로서 미술이 무시 받는 것이 마음이 아파 관람객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이게 담당 부장님 눈에 띄게 되면서 봉사자분들이 안 나오실 대 제가 전시 해설 업무를 담당하게 된 거죠. 이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런 직업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 당시 기억 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기억의 잔상이 정말 긴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전시회는 사진 전시회였어요. 필립 할스먼의 전시회였는데 <점핑위드러브>라는 전시회였어요. 이 전시회가 한 9~10년 전 전시회였는데, 그 당시에는 전시회를 2, 30대 남성이 혼자 보러 오는 게 흔하지 않았었습니다. 근데 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어주셨어요. 그랬는데 한 2주 정도 뒤에 다시 오셔서 저의 설명을 똑같이 다 집중해서 들어주셔서 “전시가 정말 좋으셨구나” 라는 생각 정도를 했어요. 근데 저에게 오셔서 이 전시를 보고, 설명을 듣고 자신도 꿈에 도전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퇴사하시고 창업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하셨죠. 이 말씀이 약간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술 작품 자체만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안내자의 언어도 긍정적인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더 시중하고 책임감 있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되었죠.



지금까지 전시 해설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직업의 미래에 대해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20년 전에는 아무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0년 전부터 조금씩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그때까지는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다 보니 제대로 된 보수를 받을 수 없었어요. 한 달 내내 일해서 30~40만 원 정도 벌었죠. 이미 말씀을 드린 부분이지만 그러다 보니 직업으로써의 브랜딩이 필요했고, 그래서 방송과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었습니다. 이게 양날의 검이 되어버린 거죠.


전시 해설가라는 직업의 겉모습에만 단순한 호기심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직업을 선택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전시 해설가가 관련 전공 이수가 필수는 아닙니다. 다만 전공을 하지 않았더라도 관련 지식은 정말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전시 해설가로서의 선을 지켜야 하죠. 근데 본인이 관심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좀 생겨서 미술계에서 이를 필요악으로 보는 시선도 생겼어요. 인기가 많은 전시 해설가를 섭외하면 당연히 관람객도 많이 오고, 관련 행사의 흥행도 보장할 수 있어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시의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죠. 큐레이터가 원하는 작품 안내에 대한 방향성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경우도 생기고, 아예 소통의 과정에서 큐레이터를 건너뛰어 버리는 상황도 생기기도 합니다. 전시 해설을 하다가 자신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전시 해설가도 있어요. 이건 작가, 주최 측, 큐레이터, 어쩌면 관객을 무시하는 행동이죠. 약간 냉소적인 시선일 수 있지만, 이게 현재 보이는 업계의 모습이고, 큰 위기이자 과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이게 미술의 대중화라고 생각이 되기는 하는데, 이 대중화라는 단어가 정말 위험해요. 저는 미술이 대중화가 되는 것이 아닌 대중이 미술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미술시대를 다루고 철학적으로 영감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미술을 많이 보고 빠져듦으로써 자신을 예술화해야 한다는 거죠. 미술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요. 

이러한 상황에서 진지함이라는 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밸런스도 금이 가는 것 같아요. 정말 미래에는 어쩌면 유명한 전시 해설가 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 편승하고 싶지 않아서 더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저의 바람 중 하나에요.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미술에 대한 애정이 정말 많으셨던 것 같아요. 대표님의 전공을 선택하신 이유와, 전시 해설가가 되시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영향받는 게 있잖아요. 아버지께서 건축 인테리어를 하셨는데 그러다 보니 집에 그림책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화도 좋아하게 됐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둘리를 너무 좋아해서 녹화해서 하루에만 몇십 번씩 돌려보기도 했어요. 그러나 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게 됐고, 이거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었어요. 완성도나 배경음악 등에 압도된 거죠. 그래서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중학생 때 학원도 다녔습니다. 근데 그 당시에 관련 학과가 없었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세종대학교에 처음 생겼었어요. 그래서 문하생으로 들어가려다가 일이 생겨서 못 하게 됐었어요. 그래서 어차피 공부는 안 하고 그림을 그리던 애니까 미술을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입시 학원을 다니게 됐어요. 거기서 또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시니까 신나서 하다 보니 서양화 전공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간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 중 한 분이 저의 성향에 맞을 것 같다면서 펠릭스 콘잘레스 토레스라는 작가를 알려주셨어요. 그 작가의 작품 중에 시계 두 개를 붙여 놓은 작품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그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추천해 주신 이유가 있겠다 싶어서 논문도 찾아보고, 도서관에 있는 책을 찾아보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 관련한 자료가 많이 없었거든요. 찾아보니까 좀 알 것 같았어요. 시계가 각각 다른 도시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게끔 설정이 되었어요. 그 작가가 쿠바 출신의 미국 작가이기도 했고 동성애자이기도 했거든요. 사회적 소수 중에서도 소수였는데, 꿈이 차별받는 이 시대 속에서도 자기가 사랑하는 연인과 평범하고 행복하게 오랜 시간을 같이 살고 싶은 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 꿈이 작품에 담긴 거였어요. 그 시계가 처음 갈 때, 몇 달 뒤에 갈 때 초침과 분침이 점점 어긋나는 게 보여요. 그러다 각자 다른 시간에 멈추게 됩니다. 이 작품에 작가는 인간의 인생을 담은 거죠. 사랑하는 존재와 한평생을 보내고 싶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결국 다른 시간에 떠나게 되죠. 같이 있지만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은 거라고 볼 수 있죠. 이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이 작가를 알기 전에는 좋은 손기술로 이미지로서 설득하는 것이 진정한 미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어서 뇌로 느낄 수 있는 예술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전시 해설가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된 거 같아요. 이런 작품을 공부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그 사람이 이 작품에 대해 크게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생각한 거죠. 시작은 둘리였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불씨가 돼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만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신념 혹은 문장’이 있으실까요?


독일의 요셉 보이스라는 예술가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이 말을 저는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학생, 직장인, 주부 등 뭘 하는 사람이든 간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명확한 가치와 긍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행하고 있다면 그 결과가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건 예술 행위고 행위자인 우리도 예술가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예술가 분들 입장에서는 조금 교만한 의미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하면서 산다면 삶 자체가 영감의 순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전달하는 게 제 직업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말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신념이자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 해설가라는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랑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언어로 솔직하게 말하면 눈치를 잘 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장 나를 응원해 주는 관람객에게만 집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 보면 주변이 힘들어지죠. 그래서 내가 안내하고 는 곳에 사람이 몰려 피해 보는 관람객이 있는지, 어린 스태프들이 컴플레인을 받지 않는지, 한편으로는 큐레이터의 기획 의도를 잘 전달했는지 신경 쓰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이타심이 있어야만 미술계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전시 해설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해설가로써 앞으로 이 진로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을까요?


후배라기 보다는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말을 한다면 이 업계가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서로 더 공존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 선의의 경쟁 안에서도 놓치면 안 되는 것은 책임감이에요. 단순히 유명세를 이유로 이 직업을 선택한다고 해도 제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선택안에서는 미술계에 대한 존중, 관람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해요. 어느 한 쪽에 절대로 치우쳐지면 안 되고요. 정도를 지키는 존중,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예술계에 대해서 책임감만큼이나 애정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자리가 많은 직업은 아니라서 신중한 고민과 계획이 필요해요. 그래서 제가 토커바웃아트를 하고 있는 것이고, 고민이 있거나 공생할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편히 의견을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대표님의 이루고자 하는 목표 혹은 프로젝트가 있으시다면?


저희는 교육을 제공하며 멘토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중 좋은 인재를 발굴해서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그게 오히려 더 큰 목적인 것 같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저희 배에 실어 같이 모진 파도를 견뎌보자는 거죠. 이전에 제가 혼자였을 때 정말 망망대해에 맨몸으로 있는 느낌이었는데, 한 분, 한 분이 주신 도움으로 뗏목이라도 만들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큰 배를 만드는 것이 토커바웃아트의 목표이고요. 저는 이제 제가 제일 사랑하는 일인 전시 해설가 업무도 하면서 그 업무 바깥쪽에서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만드는 역할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해 보고자 하는 게 개인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