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소현문(아트모아 기자단 5기 홍수민 기자)
[아티(ATI) 기업탐방] 소현문
소현문, 지역 문화의 문을 열다.
소현문 백필균 대표
수원 화성을 잇는 또 하나의 문, 소현문.
과거와 현재, 지역과 예술을 잇는 수원의 독립 문화공간이다.
매일아침 소현문을 여는 백필균 운영자는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며,
큐레이팅의 삶을 개척한다.
그의 언어를 좆아, 소현문이 그리는 예술 속으로 들어가 본다.

소현문 백필균 대표
소현문 갤러리에 대한 소개와 함께, 갤러리가 지향하는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소현문’이라는 이름에서 ‘소현’은 논어의 회사후소(繪事後素)와 불경의 파사현정(破邪顯正)에서 한 글자씩 빌렸고, ‘문’은 수원 화성의 사대문을 이어 새로운 문을 연다는 의미입니다. 조선시대 축조된 성곽이 현대 도시와 공존하듯, 소현문 또한 어제와 내일을 연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오래된 물음(問)을 남깁니다.
갤러리를 연 것은 제게 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독립 큐레이터로 전국을 다니며 한창 전시를 기획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힘들기도 했던 차에도 해마다 한두 번씩은 수원 내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지역과의 연결감을 느꼈죠. 그러던 중 지금의 공동 설립자 분이 건물을 새로 지으셨는데, 1–2층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주셨어요. 사실 비슷한 제안은 여러 번 받았지만, 뚜렷한 사업 모델이나 지속 가능한 계획이 없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공간의 여건과 시기, 그리고 제 안의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맞물렸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소현문을 열게 됐죠.
소현문을 운영하면서 저는 ‘중앙과 주변’을 경계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외부의 것을 수입하기보다는, 이 지역의 정체성과 한국의 현대사를 이어 소현문이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드러내는 기획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전시나 이벤트를 기획해왔고, 관객들이 그 의도를 느낀다면 정말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제 의도대로 보지 않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와 재미를 발견해 간다면 그것 또한 제게는 큰 보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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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문
대표님께서는 현재 갤러리 운영 외에도 비평,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그중에서도 커리어의 첫 발판이 되었던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큐레이터를 처음 선택하게 된 계기는 사실 저도 몇 년 전에 알게 됐어요. 정부24에서 생활기록부를 조회해봤는데,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때 진로 희망란에 ‘큐레이터’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정말 그 일을 하고 싶었던 거죠.
처음에는 ‘미술 교사’를 꿈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교사는 주로 청소년들을 만나잖아요. 저는 청소년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와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미술관이나 문화공간에서라면 가능한 일이겠다 싶었고, 그때는 ‘에듀케이터’와 ‘큐레이터’의 구분도 잘 몰라서 그냥 큐레이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예술 관련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제가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에 계원예고에 진학했어요. 큐레이터를 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대학에서는 한국화를 전공했는데, 그 당시에도 ‘문화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있었거든요. 예고나 미대 모두 기본적으로 ‘작가주의’적인 분위기예요. 예술가가 되는 것이 가장 높은 목표처럼 여겨지죠. 저도 초기에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학부 2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이 길이 정말 내 길일까?’ 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래서 3학년 때는 미술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바깥일들을 해봤어요. 미술관 도슨트도 하고, 방송국 사극 드라마에서 동양화 그림을 그리는 일도 했어요. MBC 사극에서 카메라 쇼트용으로 동양화를 잘 그릴 남자 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직접 차출되기도 했죠. 기말고사 전날까지 새벽 촬영을 하고도 “시험을 망쳐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큼 재밌었어요. (웃음)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면서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하는 생각이 들던 중 군대에 가게 됐죠. 재미있게도 제 인생의 첫 전시 기획은 군대에서였어요. 생활관에서 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소질 있는 후임 8명을 모아서 작은 전시를 열었어요. 그 일을 통해 ‘이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예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미술을 매개로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일이 너무 흥미로웠거든요. 전역 후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제야 다시 깨달았죠. “맞아, 이게 내가 하고 싶던 일이었지.”
그렇게 저는 본격적으로 큐레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실 때, 함께할 작가를 선정하거나 전시 주제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전시를 기획한다고 해서 항상 제가 작가를 ‘선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생각보다 많은 전시가 이미 주최 측이나 기관의 방향, 지원 자원의 조건 등에 따라 작가 라인업이 정해진 상태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주제를 정하고 작가를 함께 구성하는 경우도 있죠. 지금까지 약 60여 개의 전시를 기획해 왔는데, 절반 정도는 그런 독립 기획이었어요. 하지만 ‘선정’이라는 단어는 저에게 다소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작가를 ‘선정’하기보다 서로의 합의로 함께 ‘구성’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합의를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한 적도 있을 정도로요. 제가 먼저 주제를 세우고 작가와 함께할 때는, 관객이 제가 전하려는 큐레이팅의 언어에 공감할 수 있는 작가인가를 먼저 봅니다. 너무 자의적으로 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작품이 지금 이 시대—이 시간대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를 스스로 묻습니다. 그 작가에게 지금 이 전시가 ‘적절한 시점’인지, 즉 작가의 커리어나 활동 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는가도 함께 고려하죠. 일종의 매니지먼트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셈이에요.
전시를 바라보는 대표님의 철학이나, 전시 공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전시의 주제를 떠올릴 때 저는 ‘내가 보고 싶은 전시’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런 전시가 있으면 재밌겠다”는 아이디어 발상에 더 나아가 실제로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까, 를 탐색하는 과정이 곧 기획이 되는 거죠. 그 안에는 전시 인터페이스 자체에 대한 관심도 포함됩니다. 많은 큐레이터들이 전시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가질 거고, 저 또한 전시 패러다임에 있어 전시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박물관의 상설 전시, 기획 전시, 카페에서 열리는 전시 등 수많은 것들이 전시되고 있어요. 감상의 대상이 되거나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보여지고 있는 것이라면 전부 전시가 되기도 하죠.
또, 저는 전시를 일종의 ‘모임’으로도 봅니다. 그럴 땐 프라이빗한 공간에 작품이 있는 것과, 오프닝 공간에 작품이 있는 것도 전시의 구분 기준이 되죠. 혼자 감상할 것인가, 혹은 나 외의 2인칭, 3인칭의 시점에 보여질 것인가. 이렇듯 전시 구조에 관심이 컸고, 초기에 기획한 〈당신의 처음이 제가 아니기를〉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전시 인터페이스 자체를 주제로 삼은 전시였죠. 또 다른 전시 〈피는 그림을 걸었다〉에서는 2010년 이후 ‘그림 속의 그림’을 그린 작가 21명을 모아 일종의 ‘전시 안의 전시’처럼 구성했어요. 그때는 팬데믹 시기라, 물리적 전시 외에도 VR과 게이미피케이션 버전, 디지털 전시를 병행했죠.
돌아보면 저는 예술을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지 않아 왔어요. 현실 정치가 움직이듯 문화 정치도 함께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전시장은 그런 문화 정치가 드러나는 공간이자, 사람들이 모여 그 시간을 함께 인지하는 장소예요. 저는 관객이 전시를 볼 때 단순히 작품만 보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전시라는 장면을 보고 있구나’라는 자각을 경험하길 바라요. 전시는 현실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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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문
새로운 작가, 특히 신진 작가와 협업하게 될 때는 어떤 기준으로 함께 하시나요?
기존 포트폴리오를 보거나, 제가 직접 봤던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을 떠올리곤 해요. 그 작품이 제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와 맞아떨어질 때, 그게 하나의 출발점이 되죠. 또 하나는, 작품이 전시에 들어오면 형성되는 컨텍스트를 봐요. 가끔은 작품 기존의 컨텍스트를 반복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 가능성이 상상될 때, 그 작가와 함께해요. 그래서 그 작가가 신진이든, 원로든, 경력이나 나이는 제게 큰 기준이 되지 않아요. 부산에 있든 제주에 있든, 작품 운송만 가능하다면 언제든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 갤러리의 운영자로서 전시에 지역성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으신가요?특히 ‘화성 외곽 걷기’처럼 지역과 맞닿은 기획들이 인상적인데요.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실 때 어떤 의도나 목적을 두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전시가 열릴 때, 그 전시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연계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두 가지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시 주제를 관객이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시장에 머무는 시간 자체를 늘리는 것이에요. 보통 관객들은 금방 둘러보고 나가시니까요. 그래서 저는 현장에서 작가와의 대화, 낭독회, 퍼포먼스 같은 프로그램을 열어 전시장을 더 오래, 더 밀도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곤 합니다.
말씀하신 ‘화성 외곽 걷기’ 프로그램도 그런 연장선에 있어요. 이번 전시는 ‘<파아이: 물질 연습>’이라는 이름의 전시인데, 아시안 미학을 연구하는 모임이 모여서 만든 전시예요. 그들의 작업을 디지털 자료로만 보는 게 아니라, 수원 화성이라는 실제 장소와 함께 감각할 수 있다면 훨씬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시 관람 후 화성을 따라 걷는 동선을 구성했습니다. 그 자체로 전시의 여운을 남기고, 소현문이라는 이름이 가진 지역적 맥락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지역성을 기획의 중요한 키워드로 두고 계신 것 같아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지역성’은 무엇인가요?
지역성, 영어로 말하면 ‘로컬리티(locality)’는 사실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에요. 저를 포함한 많은 기획자들이 “지역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고 있죠. 저는 그것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봐요. ‘저항감’과 ‘취향’입니다.
먼저 ‘저항감’은 말 그대로 지역의 몫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에요. 우리 현대사를 보면, 경기도는 오랫동안 서울의 위성도시로 기능해왔죠. 베드타운이 되거나, 경제적 기능을 전담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이 서울 중심의 구조 속으로 흡수되어 갔어요. 그 결과 지역 고유의 문화 생태계는 많이 기울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단순히 지역의 특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울어진 구조를 바로잡는 일, 문화적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현실정치의 의미가 아니라 문화정치의 균형에 관한 이야기예요. 결국 지역성을 말하는 이유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권리, 즉 가까운 곳에서 전시를 보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권리의 회복과 연결되어 있거든요.
한편으로 지역성은 사실 다 ‘취향’이 아닐까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지역의 어떤 콘텐츠가 있더라도, 그 지역 사람들의 기호가 없다면 그것을 지역성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어요. 수원을 예로 들면, 수원 사람들에게 ‘화성’에 대한 기호가 정말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죠. 처음엔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수원화성문화제나 화성행궁 미디어아트쇼의 관객 수를 보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안에는 이미 그것이 있다는 자부심과 그것을 계속 기억하려는 움직임, ‘일종의 기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역성을 하나의 취향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지역성을 저항감과 취향, 이 두 가지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어요. 제가 따로 표명하진 않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수요일 수요일> 전시의 작가들은 모두 수원 출신이거나 경기 남부권 작가들입니다. 가까운 지역권의 작가 네트워킹을 도모하려는 이러한 시도 또한 지역의 몫을 회복하려는 ‘저항감’의 관점에서 지역성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동료를 만나기 위해 자꾸 멀리 가야 한다면, 그것도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가까운 지역 안에서 작가들이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지역성과 결부된 문제의식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소현문
작품의 가치나 의미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건 큐레이터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도슨트가 대표적인 방식일 것 같은데, 그 외에 필균 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작품을 전달하고자 하시나요?
오히려 도슨트는 부차적인 역할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관람객 모두가 도슨트를 보는 건 아니니까요. 대부분의 경우 전시는 도슨트 없이 진행되고, 그렇기 때문에 보여주는 것 자체로 작품의 가치가 전달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큐레이팅이라고 봅니다. 저는 전시의 언어, 즉 텍스트 언어와 시각 언어가 어떻게 이미지를 불러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전시 서문 같은 텍스트 언어도 하나의 이미지를 불러내죠. 그리고 작품이 가진 시각 언어 역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 두 이미지의 결이 맞아떨어지도록 하는 것이 제가 집중하는 부분이에요.
따라서 전시 서문이나 작품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항상 그 결에 맞는 표현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전 전시에서 이미 사용했던 개념이나 표현은 되도록 피하려고 해요. 다른 작가를 설명할 때 썼던 언어를 또 쓰지 않으려 하고, 작가 본인이 과거 전시에서 사용했던 텍스트를 그대로 옮기지 않으려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각 전시가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맥락 안에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제가 가장 피하려는 건 ‘진부함’이에요. 그 진부함은 전시의 디스플레이나 작품을 소개하는 스크립트 같은 언어에서 생겨날 수 있죠. 그래서 어떻게든 새로운 감각과 이야기를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합니다. 물질은 결국 사라지지만, 감각과 이야기는 남으니까요. 그걸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제가 작품을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지금까지 기획하신 전시 중에, 가장 마음에 남거나 ‘이 전시는 꼭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느낀 작품이 있을까요?
사실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생각해보면, 저한테는 그런 게 딱히 없더라고요. 순위를 정하기도 어렵고, 각 전시마다 개별적인 만족도와 감사함이 다 달라서 모두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하나를 꼽기보다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전시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인터뷰를 하다 보면 ‘앞으로 열릴 전시들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수요일 수요일》 전시 다음에는 아시아 현대미술 3부작의 제2부인 《파아이: 물질 연습》이 열립니다. 이어서 일본 후쿠오카의 갤러리 아울과 공동기획하는 《기억 항로》, 그리고 공예의 무게에 주목하는 현대 공예 전시와, 조각의 바닥을 조명하는 《우수빈 : 바닥》 전시가 연이어 열립니다. 위 전시를 차근차근 무사하게 준비하고 소중한 관심이 따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시는 끝나고 나면 스스로 살아남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하지 않아도 전시 자료나 관객의 기억 속에서 그 전시가 알아서 떠돌아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혹은 인터넷 기록 속에서 어떻게 보면 유령처럼 부유하고 있는 거죠. 전시들이 기억과 기록 속에서 잘 살아남길 바라지만, 그건 제 손을 떠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가 하나의 자립을 한 셈이죠. 가끔 예전 전시를 봤던 관객이 찾아와서 “그때 그 전시를 봤어요”라고 말하거나, 함께했던 작가들이 연락을 주면 그 순간마다 그 전시들이 다시 제 기억 속으로 떠올라요. 그렇게 전시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곱씹히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전시들도 많지만, 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궁극적인 목표가 있으실까요? 갤러리 운영자나 큐레이터로서, 혹은 개인적인 인간 ‘백필균’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소신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빠르게 피보팅할 수 있는 유연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기 주관만 고집하면 안 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따라 각도를 조정하면서 움직이는 것. 그게 매개자로서 큐레이터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오랜 생각을 밝히자면, 저는 ‘억지로 되는 일’을 피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가 “이건 봐야 해”, “이건 해야 해”라고 정해놓은 사회화된 기준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교육적 목표와 가치, 그리고 삶의 방향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것. 따라서 그런 자연스러움에 다가갈 수 있는 사건들을 만드는 일, 그런 경로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싶다”, “미술을 하고 싶다”고 말할 때도 그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린 걸까? 정말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걸까? 그 질문이 저한테는 늘 유효합니다. 계속 의심하고, 그 과정 속에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전진해 찾고. 그것은 영원히 내 앞에 오지 못하는 고도일 수 있으며 또는 여전히 도달하지 못하는 목적지 같은 것일 수 있지만. 그런 것을 향해 계속 길을 찾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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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문
마지막으로, 미술을 하고 싶어 하거나 전시 업계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분들, 혹은 큐레이터의 꿈을 품고 있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결국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같은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큐레이터의 삶이 있는 것 같아요.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큐레이팅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큐레이팅은 말 그대로 세상의 소리를 보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긍정할 수 있고, 그게 자신에게 유효하다고 느껴진다면 큐레이터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큐레이터는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 직업이에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조율해야 하고, 말을 꽤 많이 하게 되죠.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게 적성에 맞는지도 스스로 봐야 할 것 같고요. 일을 하다 보면 사람도 바뀌니까,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큐레이터는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이 어렵습니다. 일각에서 ‘매개자’로 번역하고, 많은 큐레이터들의 특정 조직에 속하지만, 이 일에 당사자의 개성을 소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나 독립 큐레이터(프리랜서가 아닌 제도 저항 차원)는 자기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 방식과 언어대로 큐레이팅한다는 것은 때로 많은 것들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이 큐레이터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에게 알맞는,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큐레이팅이 있고, 그게 자기 일이 되면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