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서울시 무용단 (아트모아 기자단 5기 최정인 기자)
[아티(ATI) 기업탐방] 서울시 무용단
“설명할 수 없는 감정도 춤은 담아낼 수 있어요”
서울시 무용단 오정윤 무용수
한국무용의 매력은 몸 속을 가득 채우며 순환하고, 안으로부터 살아나는 호흡에 있다.
무용수는 이 호흡에 언어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낸다.
스스로에게서 영감을 찾아 한국무용 고유의 멋으로 풀어내며,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을 탐험해 나가는 오정윤 무용수를 만나 보았다.
서울시무용단의 부수석단원이자 안무가, 움직임 브랜드의 대표,
그리고 릴스 크리에이터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해내는 매순간에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서울시무용단 부수석단원 오정윤 무용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시무용단 부수석 무용수 오정윤입니다. 저는 무용수 외에도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연극과 안무 작업을 하기도 하고, ‘위아무브’라는 움직임 브랜드를 만들어서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어요. 요즘 화제가 된 건 인스타그램 릴스인데, 릴스 크리에이터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그냥 무용수라고만 소개하지는 않아요. 무용이 저의 첫 페이지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로 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용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이력을 간단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함께 말씀해 주세요.
학창 시절 저는 끼가 많고 주목받는 성격이었기에, 꿈은 아이돌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 반의 스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활발했고, 자연스럽게 연예계를 꿈꾸게 되었죠. 하지만 마침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유행하면서, 실력파 가수들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저는 노래에 특별히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가수의 길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부모님도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고, 주변 지인의 권유로 ‘무용’을 제안받게 됩니다.
아이돌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럽게 한국무용을 하려니까 처음엔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를 못 붙이던 찰나에 황진이가 방영된 되었고,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춤과 한복에 매료되면서 한국무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다행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도 무용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우연처럼 오디션 기회가 왔어요. 계속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우연만으로 오는 기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오디션을 볼 수 있었고, 오디션을 준비하는 레슨에서 제가 보여준 어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도 저를 눈여겨 봐주셨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수업 외에도 듣고 싶은 선생님들의 수업을 추가로 계속 들었거든요. 28학점까지도 수강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때 국립무용단 선생님의 수업을 매학기 들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춤도 늘고, 선생님께 무용단 권유도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 곧바로 무용단 오디션 공고가 났습니다. 무용단 시험은 매년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무용단에 들어온 이후에도 힘들었을 때가 있었지만, 그 즈음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로 주역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것이 발판이 되어서 승급을 하게 되었고, 안무도 작업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디렉터에게 작업 제안을 받아서 배우로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에게 삶은 끊임없이 탐험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사는 일’ 자체가 무척 흥미롭고, 늘 기대하게 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무용수가 되기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반대로 이 직업의 어려움을 실감하는 순간은 언제인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감정은 정말 다양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슬프거나 기쁘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를 때가 있죠. 그런 감정은 절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장면에 공감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는 것을 보면 무슨 감정인지 모르면서도 따라 우는 것처럼요.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것의 10분의 1도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무용으로는 그게 가능한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걸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제가 주역으로 데뷔한 작품은 <카르멘> 이었는데, 칼로 사람을 찌르기도 하고 난투극을 벌이는 작품이에요. 다소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런 극한의 감정까지도 표현해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고, 또 관객이 지켜봐 준다는 사실이 짜릿하게 다가왔습니다.

서울시무용단 창작 무용극 <카르멘>
배우들이 말하는 직업의 장점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위아무브(Weah Move)’라는 움직임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무용을 통해 제 삶이 축복받았다고 자주 느껴요. 춤을 출 때마다 스트레스도 해소되죠. 춤이 주는 이 좋은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도 함께 느꼈으면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다니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의 몸을 보면 너무 딱딱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몸이 부드러워야 편할 텐데, 과하게 긴장된 상태로 굳어 있으니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운동하는 분들과 함께 춤 클래스를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차갑고 경직돼 있던 분들이 나중에는 훨씬 부드럽고 따뜻한 상태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수업에 점점 수요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정식 런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학원’이나 ‘오픈 클래스’ 같은 명칭을 사용하지만, 저희는 ‘움직임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돈을 받고 숙련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배움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커뮤니티로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객의 시각에서, 서울시무용단은 한국무용을 굉장히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레퍼토리로 풀어가고 있는 단체라고 생각되는데요. 직접 몸담고 계신 분의 입장에서 보는 서울시무용단만의 고유한 성격이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 서울시무용단은 매우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무용의 전통적인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 창작 작업 역시 활발히 이어가고 있으며, 서울시무용단은 대한민국에서 한국무용 창작을 가장 먼저 시도한 단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어요.
초대 단장이셨던 문일지 선생님께서는 매년 창작 발표회를 열어 단원들이 창작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단원들이 대학로 소극장에서 매해 공연을 올리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뛰어난 작품이 나오면 더욱 발전시키는 시스템이었어요. 계속해서 창작과 실험이 이어진 덕에 서울시무용단은 역사적으로 도전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여 온 무용단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이 외에도 단원들에게 각 지방의 전통 춤을 조사하게 하고, 해당 지역의 저명한 무용인을 초빙하여 직접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학습에 그치지 않고, 배운 춤을 토대로 창작 작업을 이어가도록 장려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전해 듣다보니 단순한 공연 단체를 넘어 하나의 아카데미처럼 느껴졌습니다. 머리로 배우는 것을 넘어, 몸으로 체득해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단원들에게는 다소 힘든 과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거에요.
이후 배정혜 단장님 재임 시절에는 〈떠도는 혼〉, 〈유리도시〉, 〈불의 여행〉과 같은 대작들이 탄생하며 큰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흥미로운 작업을 통해 창작 역량을 키워주신 선배 예술가들의 전통이 지금까지도 서울시무용단의 기틀이 되어 이어 지고 있어요.
최근에도 〈스피드〉, 〈일무〉와 같은 새로운 창작 공연을 선보였으며, 현재는 전통춤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메시스〉라는 작품을 준비 중에 있어요. 결국 서울시무용단만의 고유한 성격과 정체성은 ‘도전과 실험’, 그리고 그것을 끝내 완성도 높은 무대로 실현해내는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업이든 끝내 해내는 힘, 그것이 서울시무용단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무용에도 <태평무>나 <승무>, <살풀이>처럼 소위 ‘전통’으로 분류되는 춤이 있고, 서울시무용단의 많은 작품들과 같이 ‘창작’으로 일컬어지는 춤이 있잖아요. 창작 작업에서는 한국무용의 전통을 어떤 식으로 반영 혹은 차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최근 한국무용에서도 조금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인데, 젊은 무용수들이 자각해야 하는 점이 ‘한국무용’ 창작을 해야하는데 컨템포러리, 현대무용을 쫓아가는 느낌이에요. 반면, 일부 현대무용 단체들은 오히려 한국적인 소재나 한국무용 특유의 호흡에 깊이 주목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가 흥행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국무용 고유의 동작만을 활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가진 '한국적인 호흡'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무용의 호흡은 바깥으로 내뻗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끌어당기며 채워지고, 다시 살아나는 방향으로 순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는 이 순환하는 호흡이야말로 한국무용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恨)'이라는 감정을 떠올려 보면 단순한 슬픔이나 비통함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무용의 호흡도 언어로는 쉽게 표현되지 않지만, 무용 안에서는 강한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고유의 감각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다소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서울시무용단의 작업 역시 외형적으로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현대무용가가 안무를 맡기도 하고, 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이 중심이 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릅니다. 서울시무용단이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할 때에도 가장 본질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은 한국무용의 정체성, 특히 호흡의 원리입니다. 형태가 바뀌더라도 본질은 유지하는 것, 그것이 서울시무용단이 지닌 중요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무용단 창작 무용극 <폴링워터:감괘>
지금까지 약 10년 간 서울시무용단에 계시면서 많은 공연을 소화하셨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나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처음 주역으로 데뷔했던 <카르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례적으로 외부에서 캐스팅을 한 케이스였습니다. 이례적으로 외부 캐스팅을 통해 참여하게 된 공연이었고, 특히 여자 주인공 한 명에게 집중되는 ‘원톱’ 무대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습니다. 어떤 공연보다 주역의 비중이 큰 무대였기에, 큰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짜릿했고, 그런 무대로 데뷔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무용단에서 2년을 보내고 3년 차에 주역으로 데뷔한 것이었기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찾아온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 <카르멘>은 단순한 데뷔작 이상의 의미를 지닌, 애착이 깊은 작품입니다.
또 <폴링워터: 감괘>라는 작품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물을 2톤 가량 채워서 진행한 공연도 기억에 남습니다. 물 위에서 한 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 거라 너무 춥고 힘들었는데, 끝나고 너무 춤을 잘 췄다고 연락을 받을 정도로 황홀경의 춤을 췄어요. 당시에는 어떻게 춤을 췄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고, 심장이 뛰는 감각만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아지경’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죠. 그런 경험은 사실 <카르멘> 때도 못 해봤던 것 같아요. 무용수로서 엄청난 경험을 <감괘> 때 한 거죠.
마지막으로는 제가 무용단에서 안무 작업을 한 작품들이에요. 앞서 말씀드린 무용단에 단원 창작이 문화가 지금까지도 이어져도 오고 있어요. 1년에 한 번씩 단원 창작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데, 그 중 제가 가장 많은 작품을 올렸어요. 최초로 1시간 짜리 공연도 했었고요. 이렇게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도 감사했고, 무엇보다 제 작품을 위해 진심으로 애써 준 단원들의 헌신과 노력 역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네 작품은 무용수로서, 또 창작자로서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용단 작업 외에 좋아하시는 작품이나 최근에 인상 깊게 보셨던 공연 혹은 전시가 있을까요?
최근에 원로 선생님들의 공연을 봤는데, 어떤 평가를 할 수 없이 경외심이 들게 하는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고유의 멋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고, 한국무용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세련된 방향으로 저를 만들어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리고 홍콩무용단의 <24절기>라는 작품도 인상깊었습니다. 공연을 보며, 흥행작이 왜 흥행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명확한 홍콩의 정서가 들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특히 이 작품은 투어를 활발히 진행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공연인데, 흥미롭게도 의상과 음악을 담당한 감독님이 한국 분이셨어요. 그런 점을 보며, 결국 한국적인 정서가 국경을 넘어 어디에서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은 의상과 음악이 주는 영향이 정말 크잖아요. 이런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며, 자연스럽게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좋은 예술가나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방금 언급드린 것과 연결 되는데, 저는 어떤 장르던 창작자의 소신과 철학이 확실한 것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도 예전에는 ‘하고 싶으니까 다 해보자’는 열정 하나로 움직이던 때가 있었지만, 결국 무대에 작품을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 하나를 벽에 붙여 놓은 것이 어떻게 예술이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 작가만의 스토리와 해석이 있기 때문에 예술이 될 수 있는 거죠. 뒤샹의 변기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창작이란 결국 ‘왜 이 작업하는가’ 에 대한 정확한 이유와 해석, 철학, 소신 같은 것들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걸 가진 사람이 좋은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고민 없이, 단순히 좋아 보이니까 따라 하고, 이랬다저랬다 방향을 바꾸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면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되긴 어렵겠지요. 무엇을 하든 깊이 생각하고 고심해서 만드는 것이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발력이 좋아서 잘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계속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 딱 번뜩이듯이 아이디어가 정리되는 거죠. 저는 예술가들이 자기가 가진 철학에 정말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인스타그램에 올리시는 릴스 영상이 굉장히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특히, 무용단 생활을 담은 영상 같은 경우 수십만에서 백 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그만큼 많은 분들이 무용수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계신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SNS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마침 며칠 전에 ‘프로무용수의 아주 평범한 하루’라는 영상을 올렸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들께 노출되며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예전에는 멋진 것, 예쁘고 잘 나온 것만 올렸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우리의 ‘오프 더 레코드’더라고요 .저는 무용을 다소 늦게 시작해서, 무용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요.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네 직장 꿀이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너는 정말 사는 게 재밌겠다” 그러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용수들이 실제로 얼마나 바쁘고 다양한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어요. 또 실제로 제 삶도 꽤 흥미로운 편이에요. 웃긴 에피소드도 많고, 주변에서 “너 진짜 웃기니까 그냥 일상 콘텐츠를 해봐”라고 권유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렇게 고민을 하고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오히려 잘하고 할 수록 자연스러움이 떨어지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충 해볼까 하고 올린 거죠. 남편과 함께 찍은 무용수 부부의 일상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는 거예요. 그 다음엔 무용수의 체중 관리 이야기로 만든 게 잘 됐어요. 제가 원래도 소식을 하는 편이라 영상 속 식사량이 아주 적게 나오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이 진짜냐 아니냐 하며 공방을 벌이기도 했고요. 덕분에 영상이 더 많이 퍼지기도 했죠. 제 동기 언니는 지하철 옆자리에 탄 승객이 이 영상을 보고 있는 걸 봤대요. 정말 신기하고 감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안무작 <윈드 웨이브(Wind Wave)>
저도 우연히 두 영상을 보고, 하루가 운동과 춤으로 가득 차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안무자로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어요. 어떻게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스펙트럼을 넓히게 되셨나요?
안무를 하게 된 계기는 <카르멘>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안무가가 주는 안무를 추지만, 특정 부분에서 솔로 안무를 직접 짜오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안무를 만들어 가져갔는데 제법 괜찮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제가 무용을 늦게 시작한 게 창작을 할 떄 도움이 됐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저는 예술중・고등학교도 안 나왔으니까 ‘이건 이렇게 해야 돼’ 라는 고정관념이 없어서 자유로운 편이라 창작을 하는데 걸림돌이 없는 것 같아요.
스물일곱 살 무렵, ‘지금이 전성기의 시작이다, 전성기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기에 내가 가장 잘 출 수 있는 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서 본격적으로 안무를 시작하게 되었죠. 저는 제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편이라, 그런 결심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어리고 미숙한 춤일 수도 있었지만, 그 나이대만의 특별한 멋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전성기를 작품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는 늘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처럼 보이는 기회도 결국 스스로 만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2019년에 첫 작품을 올릴 때 실감했죠. 사실 저는 2015년부터 꾸준히 동작을 개발하는 작업을 했어요. 4년간 프레이즈를 쌓아두었고, 그렇게 준비한 결과물로 2019년부터 본격적인 안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해만에 신작 3-4개를 만들었는데, 이미 축적해 둔 프레이즈가 많았기 때문에 그중에서 골라 적절히 꺼내 쓸 수 있었고, 작업도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니까 새로운 주제에 맞춰서도 춤이 술술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안무라는 작업 자체를 더 재미있게 느껴졌고, 동시에 여러 기회를 얻으면서 계속해서 실력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안무를 할 때는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시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발전시키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그냥 제 자신이에요. 초반에는 저를 더 알고 싶어서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제가 느끼는 감정에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고 영감이 떠오르면, 내가 왜 저걸 보고 이걸 떠올렸는지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요. 저는 ‘슈퍼 N’이라 ‘만약에’라는 상상이나 가정을 좋아해요. 그런 식으로 탐험하듯 상상하고,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어요.
‘자신에게서 영감을 받는다’는 말이 다소 모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보다 보면 특정 장면이나 대사에서 감정이 움직일 때가 있잖아요.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곱씹고 탐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 작업은 단순히 “이 책을 읽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처럼 뚜렷한 출처가 있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제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의 흐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안무작들 중에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리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또 다른 작품은 <아, 아>입니다. 신인작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제가 정말 진심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돌이켜보면 관객에게도 ‘진심’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진심, 철학 이런 진부한 이야기들이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창작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안무작 <여자력>
안무가로서 직접 움직임을 창작하고 무대를 연출하는 경험이 무용수로 주어진 안무를 수행할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혹은 반대로 오랜 무용수 경험이 안무에 도움을 줄 때도 있고요.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안무를 하면서 무용에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안무작업을 해보니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했을 때 더 잘 보이는지를 알아서 춤을 더 잘 추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춤을 잘 춘다고 안무를 잘한다거나, 안무를 잘한다고 춤을 잘 출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두 가지를 다 잘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사실 둘 다 잘하는 케이스가 많지 않지만, 지금 40대가 되어가는 안무가들 중에 명확한 핵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시면서 두 가지를 다 잘하는 분들이 계세요. 저는 막 주역으로 데뷔했을 때 그분들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선배들이 앞으로 우리 무용계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그분들과 작업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왜 그분들이 잘되는지, 어떻게 작업을 준비하고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서는지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직접 보고 겪는 것만큼 깊이 있는 학습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을 통해 어떤 것이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준비중인 작업도 있을까요?
작년부터는 무용수로서 공연을 더 많이 하게 됐는데요, 지금은 서울시무용단 신작 <미메시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례적으로 전통춤을 많이 추는 공연인데, 되게 살아있는 전통 무용이에요. 보통 전통무용은 일정한 틀과 규칙에 따라 구성되어 있어서 역동적으로 느껴지기 어려운데, 이번 작품은 그 틀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전통 안에서 새로운 생동감을 불어넣는 작업이에요. 감독님께서도 무용수 출신이라 디렉션이 굉장히 춤 중심적이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또 하나는 아마 아이를 낳기 전 마지막 안무작이 될 신작인데, 연말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단원 신작 공연을 위해 준비 중이에요. 이번에는 ‘듀오전’ 형식으로, 듀엣 작품들만 선보이게 됩니다. 오랜만에 안무 신작을 올리는 만큼 기대와 설렘이 크고요.
그리고 위아무브도 이제 무브 플로우가 정식 런칭을 해서 한국무용 클래스도 같이 오픈을 해요. 외부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은데, 하우스 ‘절기’라는 곳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 해요. 다과도 즐기고 공연도 볼 수 있는 프리미엄 공연을 기획 중입니다. 결혼식 디렉팅도 한 번 참여해보려고 하고, 프로젝트 ‘무낙’이라고 한복 브랜드랑 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올해는 <한량무>랑 이런 한국적인 소재로 해볼까 해서 준비하고 있어요. 올해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전 원래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정말 즐겁습니다.
조금 더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계획이나 목표도 여쭤보고 싶어요.
일단 위아무브를 통해서 사람들이 춤을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모든 사람은 아기였을 때 자연스럽게 춤을 췄잖아요.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자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춤을 멀리하게 됩니다.
한 번은 요가원에서 운영한 움직임 수업에 한 분이 오셨는데, 대기업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분이셨어요. 회사에 다닐 땐 몰랐는데, 그만두고 나니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수업 중 춤을 추며 너무 좋아서 소리 내 웃으시고, 마치 아이처럼 설레어 하시더라고요. 그분이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아무 제약 없이 마음대로 움직여본 게 처음이에요."
제 수업은 숙련에 목적이 있지 않아요. 거울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움직임 프로그램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춤을 좀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약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단순히 제가 잘 되고, 어느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요. 명확한 꿈이나 장기적인 계획 이런 건 없지만, 하다 보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계속 이렇게 뭔가를 만들고, 그냥 예술을 계속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무용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실까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고민돼요. 희망을 줘야 할지, 현실을 말해야 할지. 그런데 만약 제가 예전의 저 자신에게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힘드니까 지금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해” 라고. 무용단에 들어가는 건 단순한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하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어떤 일이든 정말 진심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하나는 열린 자세예요. 한 가지에만 갇혀서는 안 돼요. 하나를 깊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가지치기를 통해서 더 단단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요즘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주목받는 시대잖아요. 그리고 어릴수록 용기가 많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걸 해봤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잘하는 한 가지는 정말 깊고 단단하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잘하는 것’ 말이에요. 그러니까, 열심히 그리고 다양하게 사세요. 그게 결국 여러분을 좋은 무용가로 성장시켜 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