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하단링크 바로가기
출석 QR 팝업 닫기
예술산업아카데미

(재) 예술경영지원센터

설문참여

기업/직업 정보

  • 홈으로

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서울문화재단 (아트모아 기자단 5기 변선민 기자)

작성자 : 곽송비 조회수 : 424 2025-12-06

[아티(ATI) 기업탐방] 서울문화재단


예술로 미래를 설계하다

서울문화재단 미래전략팀 남궁태윤 대리

 

문화예술은 언제나 현재를 비추면서도 미래를 그려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은 그 중심에서 예술가와 시민, 그리고 도시의 삶을 연결하며,

‘문화와 예술로 행복한 서울’을 만들어가는 기관입니다.


그중에서도 미래전략팀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의 가치와 공공의 역할을 새롭게 그려나가는 부서입니다.

예술의 방향을 정하기보다 예술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일,

그 철학을 바탕으로 남궁태윤 대리님은 예술과 정책,

사람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며 예술이 던지는 질문을 정책으로,

정책을 다시 예술로 되돌리는 여정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서울문화재단 미래전략팀 남궁태윤 대리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문화재단 미래전략팀에 근무하고 있는 남궁태윤입니다. 



서울문화재단 안에서 아주 많은 일을 하셨더라고요! 먼저 서울문화재단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대리님이 소속해 계신 미래전략팀에서 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의 문화예술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지원하고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서울문화재단의 미션이 “문화와 예술로 행복한 서울 만들기”에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인을 지원하는 파트가 있고 시민들이 그 예술을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 향유 파트가 가장 큰 두 축이에요. 쉽게 생각하면 서울의 문화예술활동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미래전략팀은 이름에 있다시피 서울문화재단의 미래(비전)를 고민하고 재단의 전략을 짜는 부서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이제 올해 21년이 되었는데요. 그 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재단도 급격하게 성장했고, 많은 부분이 달라졌어요. 미래전략팀에서는 새롭게 바뀐 환경과 사회 변화 속에서 서울문화재단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를 조금 더 미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경영기획팀과의 차이를 물어보시는데요, 경영기획팀은 현재부터 근미래를 바라본다면 미래전략팀은 좀 더 거시적인 미래를 고민하는 팀입니다. 



대리님께서는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 시작해 예술교육팀을 거쳐 서울무용센터, 청년예술팀에 계시다가 최근에는 미래전략팀으로 옮기셨어요. 조직도상으론 문화진흥본부, 예술창작본부에 주로 계시다가 정책협력실로 옮기신 건데요. 이전에도 부서를 많이 옮기였지만 이번에는 예술인 지원 사업에서 아예 정책 쪽으로 옮기신 것이니까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부서 이동을 통해 문화 예술을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된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예술인과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일하는 경험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진짜 말 그대로 되게 큰 관점, 거시적인 관점에서 재단을 봐야 하는 거죠.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 전 세계적인 예술의 흐름을 봐야 하고 그 흐름 안에서 서울의 예술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제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그전까지는 예술인을 바로바로 지원하는 입장이라서 예술의 큰 흐름은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어떻게 하면 지원과 정책들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인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어떻게 비예술인, 문화예술 생태계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정책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가 이런 부분이 미래전략팀에선 조금 더 고민이 되는 지점이죠. 




<2022서울 아트마켓 팸스시즌: 무용> 협력 행사의 모습




예술의 흐름을 본다고 하셨잖아요. 문화예술 업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 중에 요즘 특히 눈여겨보고 계신 흐름이 있으신가요? 요즘 너무 많은 변화가 빨리빨리 일어나는데, 미래전략팀이라는 자리에서 단순히 변화를 관찰하는 걸 넘어 ‘이건 재단 차원에서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판단하게 되는 기준은 무엇인지도 듣고 싶습니다.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아요. 예술의 영역은 무엇이고, 예술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이요. 예술은 늘 사회에 질문을 던져왔고, 결국에는 그런 질문들이 앞으로도 계속 던져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예술인들이 예술인답게 사고하고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대다 보면 예술과 정책이 가져가야 하는 흐름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예술인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제한하는 경계부터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공간만으로는, 또 서울이라는 도시만으로는 너무 좁다고 느껴져요.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 더 다양한 문화와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 다양성도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지금 서울에 외국인이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가 관광객 외의 외국인을 잘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냐는 부분에서는 그렇게 글로벌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시민으로서 이 사람들을 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냐는 거죠. 이런 부분들이 아직 많이 닫혀 있지만 그 경계를 먼저 넘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술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한국의 많은 문화 정책이 대부분 한류를 알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었기 때문에 수출적인 지원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 이 다양성 앞에서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 흐름은 수출이 아니고 교류라는 거죠. 교류란 양쪽이 서로 교류하는 것이기에 단편적인 소통이 아니라 서로 정말 함께 섞일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정체성을 우선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말 서울 사람일까요? 대부분이 서울에서 활동하다가도 또 지방에 가서 활동하고 해외 가서도 활동하고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정체성이라는 말이 너무 다양해졌고 그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도 자유롭게 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제도의 영역도 정체성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서울이 글로벌 시티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정책 방향성이 한국인 예술인들만 지원하는 것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궁극적으로 서울 문화 생태계에 기여한다는 전제하에서요. 예술인이 서울의 시민이 아니거나 서울에서 소재하지 않거나 서울에서 활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에서 지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뛰어넘어야 하는거죠.



예술은 본질적으로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재단은 세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시민 전체의 이익과 공공성을 수치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이 간극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술의 가치는 대부분이 정성적 가치이기 때문에 정량화할 수 있냐라는 부분에서 꾸준히 많은 연구와 고민이 있었어요. 미술관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예술 교육받고 범죄율이 줄어든다 이런 식의 연구들이 많았죠. 사실 예술이 좋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막연히 아는데, 여러 연구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가치를 정량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뉴스에서도 가장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게 축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혹은 만족도가 얼마나 높다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근데 저는 AI시대에 맞춰 더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AI가 정말 많이 발달했으니 이젠 정성적인 이야기를 엄청 많이 모을 기회가 왔잖아요. 사람들이 느꼈던 가치, 예술을 통해 긍정적으로 바뀐 경험을 이제 더 많이 수집할 수 있고, 더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는 거죠. 결국엔 개인의 변화가 사회 변화이기에 개개인의 변화를 더 수집하면 예술의 가치를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을 거에요. 이제는 예술을 경험한 개개인의 변화를 더 세분화해서 수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후원하는 사실 주체는 되게 많잖아요. 민간 기업도 있을 수 있고 개인이 할 수도 있는데, 재단이 이 문화예술 생태계에 필요한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한국처럼 예술에 공적 자원이 이렇게 많이 투자되는 나라는 진짜 손에 꼽습니다. 코로나 때도 한국은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놓지 않았고 계속해서 지원을 키워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한국의 공적 자원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술은 예술인을 지원하는 것과 시민이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 이 두 축이 굉장히 중요해요. 완전히 예술인을 지원하는 것에만 몰두하면 예술은 시민들이 향유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예술로 가게 되겠죠. 그런데 꼭 이해되는 예술만 만들어야 한다고 하게 되면 그게 정말 예술일까 하는 질문들이 생기죠. 결국 예술은 상충하는 두 가치가 함께 갈 수 밖에 없고, 이 균형을 맞추기에 재단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서울시의 행정조직으로서 문화부가 아니라 법적으로는 민간 재단이에요. 여전히 서울의 세금을 쓰지만 법적으로 저희는 공무원이 아니죠. 하지만 공공의 돈을 쓰기에 공공성에 대한 고려와 많은 법의 제약을 받고 있어요. 이렇게 민간 재단과 공공 재원 사용이 결합한 구조라 이 두 가지 축의 균형을 더 잘 맞출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그 두 가지 축 중에서 예술인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은데요, 이전에 청년 예술인들을 상대로 진행하신 ‘진진진’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문화예술 지원 사업들이 참가자들을 무력화시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셨어요. 그들에게 주체성을 주고 너무 많은 것을 지원하는 걸 지양하자고 하셨죠. 결국 지원이란 ‘돕는다’라는 말이지만, 때로는 가장 큰 도움은 ‘손을 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원이 예술가를 무력화시키지 않으려면, 재단은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서부터는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입’보다는 ‘관심’, 그것도 간섭이 아닌 파트너로서의 따뜻한 관심이 맞다고 봐요. 최근에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들이 많이 생기면서 그것들이 청년들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고 얘기했던 것은 그 정책에 담겨있는 관심이 ‘청년의 상태를 제대로 바라본 관심이었을까’라는 질문인거죠. 청년들이 첫 지원금을 받기는 정말 쉽지만 그다음 지원금을 받기가 정말 어렵고, 처음에 너무 큰 돈을 지원하죠. 누군가는 큰돈이 필요하겠지만 누군가는 아닐 수도 있고, 특히나 예술은 장르에 따라 드는 비용이 다르잖아요. 예술인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그냥 청년으로 단순하게 생각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고유성, 개별성이 고려되지 않고, 하나의 큰 형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예술인들이 그 형식에 맞춰서 예술을 하게 하고 그게 오히려 창작의 길을 막아버린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을 지원하는 일, 특히나 창의적인 창작물을 만드는 예술인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도 더 창의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책도 호기심을 가지고 예술가와 작업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일을 할 때 함께하는 예술가가 정말 궁금해 하거든요. 이 예술가가 어떤 작업을 할지, 이걸 왜 하는 건지, 누구와 함께하는 건지, 이런 질문들을 정책도 동일하게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청년예술청 거버넌스 프로젝트 <진진진 클럽>의 결과 공유회 일정 설명 현장 




그런 면에서 정말 다양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도 장르도 그 다양성을 고려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화예술이 그 정점에 있는 것 같아요. 이전 인터뷰에서 문화예술은 사회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표현해 주셨어요. 여전히 이 생각에 변함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일을 하시면서 문화예술이 정말 다양성과 동등성, 포용성을 넓혀왔다고 피부로 느끼실 때가 있나요?


그 생각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어요. 오히려 예술이 이 사회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의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게 굉장히 많아졌잖아요. 요즘 더 자주 일어나는 자연재해도 그렇고,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더 큰 차별과 혐오가 생겨요. 또, 우리가 AI를 사용하면서 시간이 더 많이 생겼지만, 여유가 더 생겼나요? 그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목적성 없는 발전이 맞이하는 결말은 과잉의 시대 같습니다. 결국 이 문제들은 지금까지 해온 일들로 해결할 수 없고, 새로운 시각과 사고방식이 필요해요. 저는 이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어떤 특정하고 명확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거든요. 재단의 역할은 그 예술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축제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쓰신 논문에서부터, 대리님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평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무용센터에서 입주 예술가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들의 삶을 들은 것이나 ‘진진진’ 프로젝트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고민을 펼쳐놓은 것, 공공성을 돌보는 주체로서 새롭게 제시한 노조까지. 대리님이 끊임없이 관심을 둔 거버넌스는 결국 ‘많은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목소리를 어떻게 엮어내느냐’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대리님이 꿈꾸고 생각하는 ‘좋은 거버넌스’의 장면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건 진짜 답이 없는 질문이긴 한데요. 사실 거버넌스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거버넌스라는 단어는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보이기도 하고, 크게도 작게도 보일 수 있죠. 원래 ‘거버넌스’라는 개념은 거버먼트, 즉 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생기면서 등장한 개념이에요. ‘거번(govern)’이라는 단어 자체가 통치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이잖아요. 거버넌스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 거죠. 저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거버넌스는 “결정의 문제”, 그리고 “그 결정에 누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예술계에서는 특히 이 ‘결정 참여’의 관점에서 거버넌스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행정학적인 정의와는 다르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실제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중심으로 논의됐어요. 물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수평적으로 들어가야 한다”라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이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완벽히 가능한 일은 아니죠. 그래서 저는 그 불가능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기술이 그 간극을 얼마나 메워줄 수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AI 같은 기술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맥락들을 읽어내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연산해 연결할 가능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왼쪽 끝에 있는 작은 이야기와 오른쪽 끝의 이야기 사이에도 사실은 어떤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고, 그걸 이제는 기계가 도와줄 수도 있는 시대예요.


또한, 요즘 들어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지점이 있는데요. 예전에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소수성’ 자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커졌어요. 상대적으로 보면 누구나 어떤 맥락에서는 소수가 될 수 있고, 작은 이야기라도 때로는 엄청 크게 들리기도 하잖아요.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나 위치, 발화의 타이밍에 따라 작은 목소리가 과도하게 크게 들리는 왜곡도 생길 수 있어요. 어떤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갑자기 커질 수도 있고, 그 사건이 없었다면 전혀 달리 들렸을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이제, 소수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왜곡을 줄이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어떤 목소리가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과대 해석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게 진짜 전체의 의견인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분별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건 맞지만, 그 맥락을 같이 들어야 진짜 의미가 생긴다는 거죠. 요즘은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과거처럼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어요. 예전엔 단순히 모두가 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했기에 식사 자리엔 ‘고기 옵션’만 있었지만, 이제는 비건, 알레르기 등 훨씬 세밀한 맥락을 고려해야 하잖아요. 그만큼 세상엔 다양한 조건과 맥락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대이고, 그걸 읽어내는 게 우리 몫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너무 빠른 판단이나 결정을 경계하려고 합니다. 빠른 집행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때로는 잠시 미루고 생각해야 할 때가 있죠. 결국 제가 하고 있는 일은 한마디로 말하면 균형을 잡는 일입니다. 다양한 목소리와 맥락, 이상과 현실, 행정의 속도와 사회의 요구 사이에서 그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거버넌스의 본질입니다.



2025 서울국제예술포럼 현장 




정말 어려운 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유튜브 라이브에서 대리님이 책임감에 대해 말씀하신 걸 봤는데, 그게 오늘 말씀하신 균형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대리님에게 책임감이란 결국 균형을 지키는 일, 균형을 유지하려는 태도 아닐까 싶은데요. 예술에도 일종의 책임감이 존재하잖아요. 대리님이 ‘이건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태도나 역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또 그것이 실제 업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자상함이요. 인간에 대한 자상함. 저도 자상하지 못한 제 모습을 많이 봐요. 그래도 결국은 자상함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는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그 얘기는 다들 하잖아요. “실수를 용납해야 한다.” 근데 현실에서는 잘 안 그래요. 결국 그건 우리가 많이 지쳐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 전체가 피로한 상태인 거죠. 그래서 이제는 그냥, 한 번만 자상해져 보자. 한 번만 더 이해해 보자. 그 시도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어차피 안 바뀌는 건 안 바뀌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죠. 그래서 최소한 한 번은 자상해 보려는 시도,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한 번의 시도만으로 의외로 많은 문제들이 풀릴 때가 있거든요. 너무 먼저 단정 짓거나,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사람이 한 번 품은 생각은 잘 안 바뀌긴 하지만, 그래도 상황이 바뀌면 또 달라질 수도 있죠. “그땐 이런 맥락 때문에 그랬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도 있는 거고요. 결국 자상함이라는 건 다양한 맥락을 읽어내는 힘이에요. 모든 맥락이 다 같을 수 없으니까요.




그럼 이어서 묻고 싶은데요. 미래전략팀에 계시니까 앞으로 문화예술이 담아야 할 목소리는 단순한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가치에 집중될 것 같아요. 대리님이 생각하시기에, 앞으로 문화예술이 담아야 할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오히려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는 것이 제 지론이에요. 문화예술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아서 하는 영역이에요. 굳이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하고 싶은 걸 다 해야죠. 물론 공공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가치들을 발견해 내야 한다고 봐요. 예술가들도 결국 그런 고민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게 예술이 가야 할 방향이다’라고 정해두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공공은 그걸 제시할 자리에 있지 않아요. 우리가 창조성과 창의성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창작하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건 공공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하거나 정책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만약 서울문화재단이나 다른 공공 문화재단처럼 공공 영역에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해요. 그게 책임감이자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문화예술이 좋아라면 공공 문화재단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공공 문화재단은 어디까지나 공공의 돈으로 공공의 가치를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립 미술관, 창작센터, 공연장 같은 특정 예술분야로 특화된 기관이나 단체로 가는 게 더 맞는 사람들도 있어요. 재단은 공공과 예술의 균형을 고민하는 조직이라 예술가 개인의 창작만 보고 일하기는 어렵거든요.


서울문화재단에는 이미 정해진 미션이 있어요. “문화와 예술로 행복한 서울 만들기.” 그 미션이 자신에게 이해가 가면 오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 기관은 정말 많아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LG 아트센터 등등 각 기관이 다 다른 미션을 갖고 있고, 어디에서 일하든 그 기관의 미션과 비전이 나와 맞아야 흔들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도 일을 하다 보면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들이 많아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확신이 안 설 때요. 그럴 때 결국 기준이 되는 건 내가 속한 조직의 미션이에요. “서울을 예술로 행복하게 만든다”라는 말에 내가 여전히 공감하고 있고, 납득하고 있기에 그걸 기준으로 다시 중심을 잡아요. 결국 지원동기라는 건 그냥 입사용 문구가 아니라,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게 납득이 가면 오래갈 수 있고, 납득이 안 가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금방 흔들립니다. 저도 원래는 사기업에 있다가 이쪽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그 차이를 더 절실히 느껴요. 결국 이 일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일인 것 같습니다.